대법원 “성폭행·출산 경력 숨겼다고 해서 혼인취소사유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2일 17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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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적의 A 씨(26·여)는 2012년 2월 베트남으로 결혼 원정을 온 남편 김모 씨(41)를 소개받고 현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5살 나이차와 언어 문제에도 시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한국에 있는 시댁에 들어와 살았지만 결혼 이듬해 비극이 찾아왔다. 함께 살던 남편의 계부인 시아버지에게 두 차례나 성폭행을 당한 것. 시아버지는 징역 7년이 확정됐으나 재판 과정에서 A 씨의 ‘불행한 과거’가 드러났다.

A 씨는 13살 때 베트남 소수민족 남성에게 납치돼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다. 8개월 만에 겨우 친정으로 도망쳐 아이를 낳았지만 곧장 남자가 데려가 버렸다. A 씨는 이 사실을 결혼중개업자에게 알렸지만 그가 남편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씨는 A 씨가 결혼 전 출산 사실을 속였기 때문에 혼인 취소사유인 ‘사기 결혼’에 해당한다며 이혼과 함께 위자료 3000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 2심은 “출산 경력은 혼인의 중대한 고려 요소로서 김 씨가 A 씨의 출산 사실을 알았다면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김 씨 부부의 혼인을 취소하고 A 씨가 위자료 3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아동성폭력 범죄를 당해 임신했다면 이러한 출산 경력은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사회통념상 고지를 기대할 수 없다”면서 “단순히 출산 경력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혼인취소사유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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