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가장, 아내-자녀 2명 살해… “불면증 탓” 112신고 뒤 투신
‘가족은 소유물’ 왜곡된 인식이 원인
똑같은 비극이 1년 만에 또 되풀이됐다.
21일 경기 광주시 한 아파트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던 40대 남성이 부인과 자녀 2명을 살해하고 투신해 자살했다. 지난해 1월 서울 서초동에서 강모 씨(49)가 부인과 두 딸을 죽인 것과 비슷한 일이 1년 만에 또 벌어진 가운데 전문가들은 그릇된 가부장 의식에 비극의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기 광주경찰서에 따르면 21일 오전 9시쯤 광주시 경안동의 24층짜리 아파트 18층에서 포클레인 운전기사인 최모 씨(48)가 부인 김모 씨(42)와 고등학교 2학년 아들(18), 초등학교 4학년 딸(11) 등 3명을 살해한 뒤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씨는 투신 직전 112로 전화를 걸어 “내가 아내를 망치로 때렸고 아이 2명도 살해했다. 불면증 때문에 아이들을 살해했다”고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부엌 쪽 거실에서 누운 채 숨져 있는 부인 김 씨와 범행 도구인 피 묻은 망치를 발견했다. 딸은 안방 이불 위에서 곰 인형을 끌어안은 상태로 누워 숨져 있었고 아들도 자신의 방 이불 위에 숨져 있었다. 최 씨는 아파트 밖 인도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피해자 3명 모두 망치로 머리를 맞아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다투거나 반항한 흔적이 없고 모두 집 안에서의 평상복 차림이어서 잠을 자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정확한 범행 이유를 밝히기는 어려워졌지만 경찰은 최 씨가 우울증과 불면증 치료를 받아왔고 분노조절장애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고 여기에 주목하고 있다. 또 최 씨가 꾸준히 일하지 못하는 가운데 최근 부인의 렌터카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집이 넘어가게 생겼다”고 주변에 하소연하기도 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웃들은 최 씨가 평소 술에 취하면 “가족을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등의 폭언을 일삼았다고 얘기하기도 했지만 경찰은 이 집에서 가정폭력 사건이 신고된 적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 씨가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린 것과 대출금이 8800만 원에 이르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점 등을 중심으로 범행 동기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이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남성이 가족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과 관련해 그릇된 가부장 의식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자신 없이는 가족이 생존할 수 없다고 여기거나 가족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인식에 비극의 불씨가 있다는 것이다. 1심에 이어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서초동 세 모녀 살인 사건 범인 강 씨도 경찰에서 “내가 죽고 나면 남은 가족들이 멸시받을 것 같아 함께 죽으려 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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