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죽음을 넘어…’ 31년 만에 개정판 만들어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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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5월 서울에 있던 풀빛출판사는 경찰에 압수수색을 당했다. 경찰은 당시 풀빛출판사가 일을 맡긴 한 제본소에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제목의 책 1만여 권을 압수했다. 책은 200쪽, 원고지 700장 분량으로 5·18민주화운동 당시 10일간의 광주기록을 담고 있었다.

이 책은 5·18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된 대학생, 사회운동가 10명이 1981년부터 4년간 모은 자료가 토대가 됐다. 이들 10명은 소설가 황석영 씨에게 책의 감수를 맡겼고, 발간을 풀빛출판사에 의뢰했다.

당시 발간을 맡은 풀빛출판사 사장 나병식 씨(2013년 작고)는 경찰에 구속되고 황석영 씨가 미국으로 사실상 강제 출국됐다. 이 책은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종합적, 체계적으로 기록한 첫 백서였지만 한동안 금서가 됐다.

신군부 치하였지만 5월 광주의 진실을 알려는 사람이 많아 지하 베스트셀러가 됐다. 당시 집필 작업에 참여한 전용호 씨(58)는 “풀빛출판사 사건 직후인 1985년 여름 신동아가 책 내용을 연재했고 일부 사람들이 고속복사기로 하루에 500∼1000권을 찍어 비밀리에 유통했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이후 일본어판은 물론 영어판도 출간돼 5·18민주화운동을 알리는 대표적 백서가 됐다.

풀빛출판사 측은 지난해 12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책이 품절됐다고 밝혔다. 홍석 풀빛출판사 사장(61)은 “1985년부터 현재까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책이 50만∼100만 권 정도 인쇄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책 발간에 참여했던 모든 분이 어려운 시기에 큰일을 했다”고 말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책이 발간된 지 31년 만에 개정판이 만들어진다.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개정판 간행위원회가 올 5월 개정판 출간을 목표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개정판 감수는 황석영 씨가 그대로 맡고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정의화 국회의장, 함세웅 신부가 추천사를 적을 예정이다.

이달에 완성될 개정판 초고는 400쪽, 원고지 2000장 분량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1985년 책 집필에 참여했던 이재의 씨(60)가 신군부, 계엄군 기록물 중심으로 집필을 한다. 또 전용호 씨가 시민 1000명의 구술을, 안종철 씨(60)가 5·18민주화운동의 유네스코 등재 과정을 집필한다.

개정판은 1985년 발간된 책의 오류를 바로잡고 새로운 진실을 담고 있다. 개정판에는 1980년 5월 23일 광주 주남마을과 학운동 버스 봉고차 총격 사건, 5월 24일 광주 송암동 주민 학살 사건의 정확한 내용 등 신군부에 의해 고립된 광주 상황이 새롭게 실린다.

새로운 내용이 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5·18민주화운동을 경험한 시민 1000명의 구술자료가 있어 가능했다. 구술자료는 송기숙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80)가 주축이 된 현대사사료연구소가 1989년 시민 500명에게, 5·18기념재단이 시민 400명에게, 전남대 5·18연구소가 시민 100명에게 각각 받았던 것이다.

간행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구술해준 시민 1000명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고인이 됐다”며 “올 5월 발행되는 개정판이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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