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영어캠프에 ‘인성’ ‘마인드’ 이름 붙여 1200만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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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인성교육 강화” 이후… 꼼수 마케팅 판치는 사교육업계

한 인성교육 업체가 판매하고 있는 고액 해외 인성캠프 홍보 내용. 업체 인터넷 광고화면 캡처
한 인성교육 업체가 판매하고 있는 고액 해외 인성캠프 홍보 내용. 업체 인터넷 광고화면 캡처
‘겨울방학 동안 캐나다 밴쿠버에서 학생의 인성을 개발하고 진로를 찾아 드립니다. 초등 4학년∼고교 3학년 대상. 4주에 590만 원, 8주에 1180만 원. 왕복 항공료와 개인 용돈은 불포함.’

정부가 초중고교생의 인성 교육을 강화하겠다며 7월부터 인성교육진흥법을 시행한 뒤 일부 교육 업체와 유학원이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업체들이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1000만 원이 넘는 기존 해외 영어캠프에 ‘인성’이란 단어만 붙여 팔고 있는 것.

국내 한 인성 교육 업체는 최근 초4∼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겨울방학 동안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호주, 유럽 등에서 진행하는 해외 영어캠프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업체 측은 이 캠프가 “단순한 기존 영어캠프와는 달리 인성을 개발하고 학생들의 진로 탐색에 도움이 된다”고 광고하고 있으며, 캠프 과정에도 ‘진로인성교육’을 명기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주 5일, 매일 4시간씩 진행되는 영어 수업이 대부분으로 영어 수업 외 시간은 하키, 수영, 헬스 등 체육과 오락프로그램이다. 인성과 관련된 시간은 하루 1시간 정도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다른 참가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높아 미국은 지원자가 몰리는 바람에 이달 중순 이미 마감됐다.

학부모가 함께 참가하는 해외 인성캠프도 등장했다.

한 유학원은 이번 겨울방학 학부모와 학생이 괌에서 4주간 참가하는 인성-영어캠프를 팔고 있다. 부모 2명과 자녀 1명을 기준으로 기본 비용은 866만 원. 항공료, 수속비, 현지 식사비와 체류비를 더하면 1000만 원이 넘는다. 유학원은 ‘인성’을 내걸었지만 광고에 소개된 프로그램은 현지 학교에서의 영어 수업, 수영과 축구 등의 스포츠 활동이 대부분이다. 인성과 직접 관련된 시간은 초청 강사의 강연, 자녀와의 대화 시간 정도다. 초청 강사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굳이 해외에서 진행할 필요가 없는 프로그램들이다. 일부 프로그램은 인성교육과는 관계없는 ‘고급 풀빌라에서 숙식’, ‘단기 특급호텔 회원권 제공’ 등의 미끼까지 제공하고 있다.

인성 교육이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정부의 잦은 정책 변경 때문이다.

교육부는 올해 초만 해도 학생들의 인성 관련 내용을 대입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비판이 일자 7월 입장을 뒤집고 “반영하지 않겠다”고 말을 바꿨다. 시행된 법에 담긴 내용도 △교대와 사범대 인성 과목 의무 개설 △초중고 교사들 인성 교육 연수 △인성 교육 종합 계획 수립 등 학생의 성적과는 관련이 없다.

하지만 학부모와 학생들은 혹시 있을지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인성 스펙’ 갖추기에 나섰다. 교육 현장에서는 정체불명의 민간 인성자격증 취득 열풍이 불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3 자녀를 둔 학부모 김모 씨는 “교육부는 아무리 인성을 점수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해도 대학들이 혹시 입시에서 고려할 수도 있지 않으냐”며 “정부 발표도 반년 만에 말이 바뀌는 등 믿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격증이든 연수든 뭐든 자식을 위해 최대한 해 두고 싶다”고 말했다.

인성 교육 강화 정책은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이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을 위해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추진됐고, 지난해 12월 인성교육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해 올해 7월 시행됐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영어캠프#인성#꼼수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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