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的근거 없는 영덕原電 투표… 주민들 “외부인이 들쑤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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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주민 투표 앞둔 ‘갈등의 현장’ 가보니

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의 한 도로에 다음 달 11일 원전 유치 반대 진영이 추진하는 주민투표와 관련한 찬반 플래카드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이미 국가정책으로 확정된 원전 건설을 되돌리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영덕의 원전 건설 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영덕=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의 한 도로에 다음 달 11일 원전 유치 반대 진영이 추진하는 주민투표와 관련한 찬반 플래카드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이미 국가정책으로 확정된 원전 건설을 되돌리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영덕의 원전 건설 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영덕=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디 투표에 관심이나 있겠습니까. 외부인이 들어와서 조용한 영덕을 들쑤시고 있는 기라예.”

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에서 만난 남호랑 영덕읍 남석2리 이장의 말이었다. 차를 타고 읍내를 돌아보니 곳곳에 ‘정면돌파 주민투표 성사시키자’ ‘영덕발전 방해하는 불순한 외부세력 몰아내자’ 같은 플래카드가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영덕은 지금 원자력발전소 유치를 둘러싸고 찬반세력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곳에선 다음 달 11일에 원전 반대 진영이 주도하는 원전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진행될 예정이다. 27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영덕군은 2010년 지역주민의 동의와 군의회의 만장일치 서명을 거쳐 원전 유치를 신청했고, 올해 7월 영덕에 원전 2기(천지 1, 2호기)를 짓는 계획이 확정됐다.

원전 유치를 신청했던 2010년만 해도 영덕군에서는 지역발전 기대감에 축제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백운해 주민투표추진위 상임위원장은 “당시 유치 신청 과정에서 4만 군민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가 없었다”며 “주민투표를 통해 군민의 목소리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영덕군은 원전 2기 건설 후보지였던 영덕읍 석리, 매정리, 창포리, 노물리 주민 399명의 동의를 받았다. 하지만 원전 유치 반대 주민 측은 “영덕군민 전체가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원전 찬성 주민들은 “후보지 단계가 아니라 이미 원전 건설이 법률로 확정된 곳이고,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된 지역”이라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된 국책사업이 목소리가 큰 세력에 의해 흔들리는 전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덕의 원전 건설 일정이 흔들리면 미래 전력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총선 등을 앞두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상황이 더 꼬이고 있다. 영덕군의원 총 7명이 모두 다음 달 주민투표를 진행하자는 데 서명했다. 이들 중 4명은 2010년에도 군의원이었고 원전 유치 신청에 앞장섰었다.

외부 세력도 가세했다. 영덕군에 따르면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가 24일 개최한 ‘4만 군민 총궐기대회’에 참가한 400여 명 중 250여 명은 녹색당, 환경운동연합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시민단체 회원들로 추정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주민투표가 이뤄지더라도 또 다른 갈등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행 주민투표법에 따르면 국가사무와 관련된 사항은 주민투표 대상에서 제외된다. 백 위원장은 “이미 영덕군 유권자 3만5000여 명 가운데 1만7000여 명으로부터 투표 동의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구천식 영덕천지원전추진특별위원장은 “‘정부가 주관하는 투표다’ ‘전략적으로 반대해야 지원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얘기에 넘어가 잘 모르고 동의한 사람도 많다”며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들만 투표에 참여할 게 뻔해 공정성을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반박했다.

주민투표를 둘러싸고 지역 갈등이 계속되면서 영덕 원전건설 사업도 지연되고 있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올해 초 영덕 주민들을 위해 취약계층 보호 등의 사업에 활용할 자율유치지원금 480억 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군의회가 심의를 보류해 예산 집행이 지연되고 있다. 영덕군이 원전업무를 중단해 원전 예정지역 주민을 위한 토지 보상 등의 절차도 지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모적인 찬반논쟁보다는 대안을 놓고 건설적으로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주민들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며 “지자체장이 적극적으로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덕=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영덕원전#영덕原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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