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 소주’로 내연男 부인 독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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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40대 내연女 구속기소… 집까지 찾아가 “한잔하자” 살해
이혼 시키려 불륜장면 찍어보내고 심부름센터에 성폭행 사주도

불륜과 치정이 얽힌 ‘사랑과 전쟁’은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치명적이었다.

지난해 3월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시작된 40대 남녀의 불륜은 평범한 가정을 파멸시켰다. 내연녀는 내연남을 이혼시키기 위해 불륜 장면을 찍어 내연남의 부인에게 보내고, 심부름센터 직원을 시켜 “내연남의 부인을 성폭행하고 내 앞으로 데려와 무릎 꿇려라”라고 사주까지 했다. 부인은 내연녀에게 3억5000만 원을 건네며 불륜을 끝내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결혼 7년 만에 얻은 딸을 위해 가정을 지키려고 발버둥쳤던 부인은 집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서울동부지검 형사4부(부장 이상억)는 내연남의 부인 이모 씨(43)에게 청산가리가 든 소주를 먹여 살해한 혐의로 한모 씨(46·여)를 30일 구속 기소했다. 한 씨는 올해 1월 서울 송파구 내연남의 집에서 그의 부인 이 씨와 술을 마시다 치사량의 수십 배에 이르는 청산가리를 소주에 탄 혐의를 받고 있다. 한 씨는 닷새 후 강원 춘천에서 긴급 체포됐지만 정신 이상을 호소하며 유치장에서 자살 시도를 벌여 석방됐다. 하지만 8개월여간의 수사 끝에 결국 다시 체포돼 구속됐다.

사건 당일 밤 한 씨는 “할 말이 있다”며 이 씨의 아파트 앞으로 찾아갔다. 한 씨는 인근 마트에서 산 소주와 맥주를 자신의 차 안에서 마시자고 했다. 실랑이 끝에 두 사람은 11층에 있는 이 씨의 아파트로 소주 1병을 들고 함께 올라갔다. 1시간여 뒤 한 씨는 혼자 얼굴을 가린 채 계단을 이용해 1층으로 내려왔다. 오전 4시쯤 집에 돌아온 남편이 발견해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아내는 이미 숨진 뒤였다. 검찰과 경찰이 체포할 당시 한 씨는 춘천에서 이 씨의 명복을 빈다는 굿을 벌이고 있었다.

한 씨가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었다. 이 씨 머리맡에 놓인 소주병의 지문은 모두 닦여 있었고, 집도 깨끗이 청소돼 있었다. 검경은 한 씨가 인터넷에서 ‘청산가리 몰래 먹이는 법’ ‘청산가리로 사람 죽이는 법’ 등을 28차례 검색한 사실을 발견했다. 휴대전화로 청산가리 판매업자에게 “개와 고양이를 데려와 청산가리를 먹여보라. 바로 죽으면 당장 사겠다”고 연락한 사실도 확인했다. 한 씨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의 거짓말탐지기 검사에서 거짓 반응이 나왔다. 검찰은 한 씨가 자신을 포장하는 연기를 잘하는 전형적인 ‘연극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씨는 “제발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며 눈물을 쏟다가도 불리한 질문을 하면 돌연 평정을 되찾고 일관되게 부인했다. 한 씨는 “이 씨가 자살한 것”이라며 여전히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조동주 djc@donga.com·박창규 기자
#청산가리소주#내연남#사랑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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