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 경관, 장전 순서도 몰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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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발사되는 약실은 공포탄’ 규정 어기고 실탄 채워
검문소 총기사고 황당한 행태

서울 은평구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에서 권총을 쏴 의경을 숨지게 한 은평경찰서 소속 박모 경위(54)가 과거에도 이런 장난을 여러 차례 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엄격한 규정에 따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할 총기를 현직 경찰 간부가 장난감처럼 다룬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의 기강 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 “과거에도 권총 장난 했다”

26일 은평서 관계자는 “박 경위가 ‘과거에도 2, 3차례 권총을 갖고 장난을 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박 경위는 25일 검문소 내 의경 제1생활실로 들어가 간식을 먹고 있는 의경들에게 “나를 빼고 너희들끼리 빵을 먹느냐”며 38구경 권총을 꺼낸 뒤 “총은 이렇게 나가는 거야”라며 방아쇠를 당겼다. 이때 실탄이 발사되면서 함께 근무하던 박모 상경(21)이 실탄에 맞아 숨졌다.

특히 박 경위는 17년 전 총기관리 규정이 바뀐 사실조차 알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경위가 경찰로 채용된 1989년에는 격발 때 가장 먼저 총탄이 발사되는 약실을 비워둬야 했다. 하지만 1998년 7월 규정이 바뀌면서 이 자리에 공포탄을 넣고 시계방향으로 다음 실탄 4발을 차례로 약실에 넣도록 바뀌었다. 이렇게 장전하면 회전식 탄창의 약실 6개 가운데 하나는 빈 약실이 된다.

경찰 관계자는 “박 경위는 여전히 처음 격발되는 약실을 비워둬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나마 박 경위는 잘못 알고 있던 규정조차 지키지 않았다. 사건 당시 그가 갖고 있던 권총의 탄창은 평소보다 왼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첫 격발 때부터 실탄이 발사되게끔 바뀌어 있던 것이다. 통상 전임자로부터 총기를 인수할 때 반드시 장전 순서와 위치, 총탄 종류를 확인해야 하지만 박 경위가 총탄 수만 확인한 탓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경찰 내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 터졌다”는 목소리가 크다. 전·의경 관리 경험이 있는 한 경찰 관계자는 “대원들과 친밀감을 쌓으려고 경찰봉이나 수갑으로 자주 장난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총기는 절대 ‘금기의 영역’이다”며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대원들을 겨눴다는 것 자체부터가 정신 나간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 관리감독 사각지대 ‘검문소’

허술한 검문소 관리감독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검문소는 관할 경찰서 경비과 소속이지만 소수만 근무하고 경찰서와는 따로 떨어져 있어 감독이 소홀할 수밖에 없다. 2010년 서울 시내 모 검문소에서 근무했던 강모 씨(27)는 “단순 업무가 반복되다 보니 고참이나 지휘관이 비상식적으로 군기를 잡거나 도를 넘는 장난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번에 사건이 발생한 검문소에서 근무하던 최모 일경(30)이 이달 초 탈영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한편 이날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열고 “총을 꺼내 겨눴다는 것 자체가 명백한 가혹행위”라며 “업무상 과실치사가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날 오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박 경위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호경 whalefisher@donga.com·김재형 기자
#오발#경관#검문소총기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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