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미안해… 풀어주지 못한 응어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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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주년/각계 100인의 4월 16일]
‘세월호는 □□다’ 키워드 분석

황무지 비참 애도 치욕 민낯 적신호…. 사람들 가슴속에서 세월호는 여전히 부정적인 낱말과 짝지어져 있었다. 온 국민이 받았던 충격과 상처가 1년 동안 조금 아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헛된 기대였다. 안전, 개혁, 직업윤리처럼 참사를 딛고 우리가 만들어내야 할 변화를 얘기하는 목소리는 아직 나지막했다.

○ 아직도 슬픔·분노에 잠긴 세월호

동아일보 취재진은 정치 경제 산업 문화 스포츠 법조 등 사회 각 분야 인사 80명과 시민 20명에게 ‘세월호라고 하면 떠오르는 생각’을 한 단어로 응답해 달라고 요청했다. 100명이 응답한 단어의 개수는 모두 126개. 주관식 응답이었지만 역시 ‘아픔’이라는 대답이 9개로 가장 많았다.

‘안타까움’(7개)과 ‘미안함’(5개)처럼 개인이 느낀 부정적인 감정을 담고 있는 응답은 전체의 42.9%(54개)를 차지했다. 국민 대다수가 참사의 심리적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물음에 ‘비탄’이라고 대답한 문정희 한국시인협회장은 “슬픔과 죄의식이 함께 버무려져 복잡한 심경”이라고 했다. ‘애도’(진영 새누리당 의원), ‘울음’(대한불교 조계종 기획실장 일감 스님), ‘슬픔’(황선홍 프로축구 포항 감독, 유도훈 프로농구 전자랜드 감독)과 같은 반응 역시 비슷한 감정을 담고 있다. 황 감독은 “아직 피지 못한 아이들 수백 명이 희생된 일에 마음이 저려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무능(3명)이나 관피아(2명)처럼 참사의 원인을 날카롭게 겨눈 답변도 34.9%(44개)나 나왔다. 참사의 원인으로 드러난 개인의 탐욕, 국가·정부의 무능력을 지적하는 목소리다. ‘무사안일’이라고 대답한 양상문 프로야구 LG 감독은 “모든 일에서 ‘대충 해도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이 모여서 터진 사고라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안전불감증’(김효명 국무조정실 세종시지원단장, 윤호진 에이콤 대표), ‘국가의 실패’(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같은 응답 역시 사회와 국가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였다.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가 80%에 이른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참사 때문에 입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분석했다. 개인의 슬픈 감정은 물론이고 참사의 원인을 비판하는 답변에도 분노가 묻어 있다는 뜻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참사 이후에도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뭔가 개선됐다는 점을 확인하지 못한 시민들의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 깨달음과 변화의 작은 목소리

‘참사 이후’를 얘기하는 응답은 이런 슬픔과 분노 사이에서 간간이 나왔다. 참사를 계기로 얻은 개인적인 깨달음이나 사회적인 개혁 요구처럼 변화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는 응답들이다. 가족(3개), 생명(1개), 사랑하는 사람(1개)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응답은 전체의 10.3%(13개)였다. 물음에 ‘추모’와 ‘가족’이라고 대답한 김명연 새누리당 의원은 “늘 곁에 있는 가족 사랑이 한결 애틋해졌다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는 안전, 화해, 직업윤리처럼 참사 이후에 뒤따라야 할 변화와 개혁 요구(11.9%)로 분류될 수 있는 응답들도 있었다. 물음에 ‘책임’이라고 답한 천호선 정의당 대표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지 못한 책임감을 스스로 먼저 느낀다”며 “정부를 비롯한 모두가 각자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렇게 깨달음과 변화를 바라는 응답은 전체의 20%를 조금 넘겨 부정적인 반응에 비하면 4분의 1가량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 한국 사회 개혁의 출발점’이라는 식의 응답이 늘어나게 만드는 게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슬픔의 힘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의미다.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명백한 인재라는 점에서 ‘쓰라린 경험’이지만 그럴수록 우리가 안전과 일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감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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