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기술대 나노-광공학과, 첫 졸업생 배출부터 6년간 취업률 100% 경이적 기록의 원천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5일 05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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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업기술대 나노-광공학과 ‘빛과 소형의 세계를 정복하다’

나노-광공학과 학생들이 학과 학술대회에 참석해 팀을 이뤄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나노-광공학과 학생들이 학과 학술대회에 참석해 팀을 이뤄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제 다양한 정보와 기술은 검색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식을 머리 속에 많이 기억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활용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가가 중요합니다.”

한국산업기술대 나노-광공학과 학과장인 송용원 교수는 “지식 정보화 시대를 맞아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다”며 “창의성은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과학인만큼 이를 연구하고 학생들에게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나노-광공학과 학생들은 창의공학설계, 창의적 연구방법론 등을 수강하며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기 위한 트리즈(TRIZ) 교육을 받는다.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tch의 줄임말인 트리즈는 러시아 천재 과학자 겐리히 알트슐러가 주창한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론이다.

알트슐러는 17년간 세계 특허 200만 건 이상을 분석해 세상을 바꾼 창의적 아이디어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가장 많이 활용된 아이디어 패턴 40개를 뽑아내 트리즈 이론을 정립했다. 트리즈는 40가지 발명 원리, 76가지 표준 해결책, 그리고 문제 해결 프로세스인 아리즈(ARIZ)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트리즈는 서로 다른 업종의 융합 및 협업 트렌드와 맞물려 경영 혁신 방법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GE, 인텔, P&G 등 세계적 기업은 물론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 등 국내 주요 기업이 1990년대 트리즈를 도입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자 기업들이 경영 혁신을 위해 속속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대 나노-광공학과 학과장인 송용원 교수가 학과 설립 취지와 교육 내용 등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대 나노-광공학과 학과장인 송용원 교수가 학과 설립 취지와 교육 내용 등을 설명하고 있다.
송용원 교수는 러시아 유학 때 경험한 일화를 들려주며 트리즈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송 교수는 고려대 재료공학과를 마친 뒤 1995년 러시아 모스크바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지도 교수가 정해주는 연구 과제를 수행해 학위 논문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연구 과제 선정과 실험 방법 등은 물론이고 실험장비도 학생 스스로 설계해 만들어 써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송 교수는 국내 학계에서는 처음으로 트리즈 최고 단계인 ‘레벨 5’를 받은 트리즈 마스터, 즉 최고 전문가이다. 그는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새로운 측정 장비와 박막 코팅기술 등을 개발하는 연구원으로 일하다 2004년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로 부임했다. 광학 분야 원천기술에 강한 러시아와 응용기술이 뛰어난 한국의 기술 교류를 위해 개설한 한-러산업기술협력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2014년에는 한-러광학설계센터를 유치했다.

송 교수는 “러시아로 유학을 갔을 당시 박사 학위를 따러 간 내가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본질은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만큼 학생 스스로 관찰, 문제 정의, 분석, 해결 방법을 찾고 실현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사회에 진출할 수 있게 도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공 지도를 맡은 나노-광공학과 남옥현 교수가 나노반도체융합센터에서 2015년 신입생들에게 앞으로 배울 교육 과정과 실험 실습 장비를 설명하고 있다.
전공 지도를 맡은 나노-광공학과 남옥현 교수가 나노반도체융합센터에서 2015년 신입생들에게 앞으로 배울 교육 과정과 실험 실습 장비를 설명하고 있다.
나노-광공학과는 국내 대학 가운데 한국산업기술대에만 있는 이색 학과다. 나노-광공학과는 나노-광 융합기술 지식을 기반으로 미래 첨단산업을 이끌어 갈 창의적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2004년 설립됐다. 이듬해인 2005년 첫 신입생을 받았다.

나노-광공학과가 산업 현장에서 바로 일할 수 있는 창의적 실무형 인재 육성을 목표로 삼는 것은 대학 설립 배경과 관련이 있다. 한국산업기술대는 1997년 초유의 외환위기로 줄 도산 공포에 휩싸인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출연해 전략적으로 설립한 산학협력 특성화 대학이다. 그래서 캠퍼스가 국내 최대 공단지역인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현 시흥·안산 스마트허브) 중심에 있다. 1998년 첫 신입생을 뽑은 젊은 대학이지만 공과 계열만 놓고 보면 국내 최대 규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졸업생을 배출한 2002년부터 6년간 내리 취업률 100%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박예진 씨(4학년)는 “청년들의 취업난이 심해 어느 대학, 어느 학과로 갈까 고민하다 취업률이 높다는 얘기를 듣고 주저 없이 나노-광공학과를 선택했다”며 “대학에서 배운 이론과 기술로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수준의 졸업 작품을 만들 정도로 실무 능력을 갖춘 만큼 취업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래 산업기술의 근간이 될 핵심 기반기술로 꼽히는 나노-광공학은 나노기술, 광학기술, 전자·제어기술, 재료공학, 기계공학 등을 융합해 LED,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다.

생활 속 나노-광공학 제품으로는 LED 조명, 자동차에 쓰이는 각종 센서, 웨어러블 디스플레이, 광통신, 나노 로봇, 태양전지, 카메라 렌즈 등이 있다. 나노-광공학과 관련된 산업 분야는 LED, 디스플레이, 미래형 자동차, 디지털융합가전, 차세대 반도체, 광의료기기, 지능형 로봇, 초미세 공정기기, 나노첨단소재, IT융합가공장비, 광바이오융합 등으로 다양하다.

나노-광공학을 전공하면 나노(Nano·10억 분의 1m) 크기의 물질, 기능적 구조, 소자를 연구, 개발, 제작하는 과정을 배우게 된다. 소자의 크기를 점점 축소시키면 기존의 광 및 전자소자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여러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규명하면서 실력을 쌓으면 초소형, 초고집적, 초고속, 초저전력, 그리고 새로운 기능의 미래형 첨단 소자를 만들 수 있는 공학과 창의력을 겸비한 산업 기술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첨단 장비(HT-MOCVD·고온 유기금속 화학 기상 증착)를 활용해 반도체 제조 공정을 점검하고 있는 나노-광공학과 학생들. 이 장비는 박막을 여러 층으로 증착해 자외선 LED 반도체나 초소형 초고속 반도체 스위치 등을 만들 수 있다.
첨단 장비(HT-MOCVD·고온 유기금속 화학 기상 증착)를 활용해 반도체 제조 공정을 점검하고 있는 나노-광공학과 학생들. 이 장비는 박막을 여러 층으로 증착해 자외선 LED 반도체나 초소형 초고속 반도체 스위치 등을 만들 수 있다.
나노-광공학과는 실무 중심의 차별화된 특성화 교육을 위해 6개 전공 실습실(광메카트로닉스 실습실, 광학 및 광계측 실험실, 광학 설계실, 태양광에너지 실습실, 나노-광전자 소자 실습실, 박막 실습실)과 2개 연구센터(LED센터, Nano-TIC)를 갖추고 있다.

LED센터는 LED 융합기술 권위자로 꼽히는 남옥현 교수가 센터장을 맡아 조명, 디스플레이, 환경 분야 LED 신기술과 함께 차세대 전력에너지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Nano-TIC는 초정밀 가공 및 측정 관련 산학 공동연구, 교육 훈련, 창업 지원, 장비 이용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1999년 85억 원, 2003년 58억 원을 지원받았으며 생체역학 전문가인 김영일 교수가 본부장을 맡고 있다.

이정원 씨(4학년)는 “기초 전공지식을 배운 뒤 대당 10억 원이 넘는 각종 장비를 다루며 실습을 하는데 기업에서 쓰는 반도체도 만든다”며 “여러 기업에서 제품 개발이나 측정을 의뢰할 정도로 교수님들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실제로 나노-광공학과 교수 11명은 기업과 정부출연연구소 등에서 일하다 교수로 임용돼 현장 경험이 풍부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영일 교수는 LG전자, LED 권위자인 현동훈 교수는 기아자동차와 생산기술연구원, 남옥현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삼성종합기술원, 김경국 교수는 일본 물질재료연구소와 삼성종합기술원 반도체연구소에서 경력을 쌓았다. 또 김창규 교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서정철 교수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성남 교수는 아남반도체 기술연구소와 삼성종합기술원, 정미숙 교수는 삼성종합기술원과 한국전기연구원에서 근무했다.

나노-광공학과는 산학협력 가족회사 약 300개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시급히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가 있고 대학과 함께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기업 20개 안팎을 매년 ‘로열 패밀리 컴퍼니’로 선정해 우선적으로 공동 연구개발에 나선다.

전국 대학가로 확산된 가족회사 제도는 한국산업기술대학교가 창안한 혁신적 산학협력 모델이다. 산학협력 패러다임을 ‘대학 중심’에서 수요자인 ‘기업 중심’으로 바꿔놓았다는 평가 속에 벤치마킹 붐을 일으킨 가족회사 제도는 산업단지에 터를 잡은 한국산업기술대가 인근 중소기업들과 산학협력을 통해 대학과 기업이 상생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당시 지지부진하던 대학 위주의 산학협력을 수요자인 기업 중심으로 바꿔 기술 교류, 공동 연구개발, 학생의 산업현장 체험, 실험장비 공동 활용 등 유기적 협력관계가 이뤄지도록 파트너십을 구축한 것이 토대가 됐다. 한국산업기술대의 가족회사는 4000개가 넘는다.

나노-광공학과 입학정원은 90명이다. 수시와 정시로 절반씩 선발하며, 입학 경쟁률은 9 대 1 안팎이다. 신입생의 입학 성적은 2013학년도 수능 평균 3.1등급, 2014학년도 3.2등급으로 나타났다. 신입생 중 수도권 출신 비율은 90%가량 된다. 기숙사는 16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전공 동아리로는 학과 선배가 후배와 팀을 이뤄 수학, 물리 등 기초 교과는 물론 전공과목을 공부하는 협동 학습 프로그램인 튜더링팀이 활성화돼 있다.

창의적 문제 해결 이론에 더해 가족회사에서 현장 경험까지 쌓은 졸업생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두산, 서울반도체 같은 기업과 전자부품연구원, 한국세라믹기술원, 한국산업기술시험원 등 연구소에 취업한다. 취업률(6개월 이상 유지취업률 기준)은 2012년 75.0%, 2014년 79.3%로 높은 편이다.

졸업하려면 캡스톤 디자인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4학년 때 학과 졸업 전시회인 나노-광공학과 학술대회나 산학협동 산업기술대전에 작품을 출품해야 한다. 영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한다. 2015년 입학생부터 ‘1인 2자격증 취득’을 졸업 요건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흥 = 김상철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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