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새는 전기료 막아… 경비원 해고는커녕 월급 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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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 대신 상생 ‘착한 아파트’들

경비원과 상생을 이뤄낸 아파트로 꼽히는 서울 성북구 석관동 두산아파트의 김재규 경비원(왼쪽)과 심재철 입주자대표가 16일 함께 웃고 있다. 올 10월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비 대신 전기료를 줄이는 등의 아이디어로 경비원의 내년 최저임금을 100% 보장하기로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경비원과 상생을 이뤄낸 아파트로 꼽히는 서울 성북구 석관동 두산아파트의 김재규 경비원(왼쪽)과 심재철 입주자대표가 16일 함께 웃고 있다. 올 10월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비 대신 전기료를 줄이는 등의 아이디어로 경비원의 내년 최저임금을 100% 보장하기로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저분들도 한 집안의 가장일텐데, 갑자기 줄이지 말고 대안을 좀 찾아봐요.”

10월 서울 성북구 석관동 두산아파트에서 열린 긴급 입주자대표회의에선 이런 발언이 여러 번 나왔다. 내년부터 경비원에게 최저임금제가 전면 적용되면서 경비비가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되자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회의에선 ‘경비원 수를 줄여야 한다’ ‘휴게시간을 늘려 월급을 조금만 올리자’ 등 다양한 대책이 나왔다. 하지만 2시간의 열띤 토론 끝에 주민들은 경비원 30명 중 일부를 해고하거나 편법을 써 월급을 일부만 올려주는 방안 대신 ‘상생’ 할 대안을 찾기로 했다. 이미 다른 아파트에선 해가 바뀌기 전 경비원 해고 바람이 몰아칠 때였다.

“새는 전기료부터 찾아서 더 줄여 보자고요.”

심재철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동대표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계산기를 두드렸다. 올해 이 아파트는 2010년보다 전기 200만 kW를 덜 써 전기료를 4억 원이나 줄였다. 아파트 안 가로등과 지하 주차장 조명을 발광다이오드(LED)로 바꾸고 급수펌프를 고효율 장비로 손보기만 했는데도 전기료를 연간 2억 원 줄일 수 있었다. 따져 보면 같은 시기에 늘어난 관리비가 1억3000여만 원이니 내년도 임금인상분을 못 줄 것도 없었다. 그 대신 주민들은 공용 전기료를 더 아끼고 외출하거나 잘 때 인터넷 셋톱박스 전원 끄기, TV 절전모드로 바꾸기 등 ‘경비비 대신 전기료 줄이기’ 운동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내년 최저임금을 100% 보장하고 더 나아가 경비원 월급을 14%, 총 경비비를 19%까지 인상하기로 했다.

이 아파트 113동 경비를 맡고 있는 방진국 씨(64)는 “혹시라도 해고되면 집에 어떻게 이야기할지 막막해 하는 동료가 많았다”며 “주민들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이참에 주민들은 경비원들의 고용 안정을 위해 ‘용역업체가 바뀌더라도 두 달 이상 근무한 경비원의 고용을 승계한다’는 조항도 계약서에 추가했다.

성북구엔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 고용하는 방법 대신 아파트가 경비원을 ‘직접 고용’ 해 경비비 문제를 해결한 곳도 있다. 월곡동 동일하이빌뉴시티 아파트는 내년부터 전용면적 135m² 이상 아파트의 경비·청소 용역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한다는 정부 방침으로 가구당 많게는 5만 원 가까이 관리비가 인상될 위기였다. 이후 주민들은 각종 아파트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며 상생 대안을 고민했고, 직접 경비원을 고용하면 부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지금은 단지 관리 중 경비원에게 사고나 문제가 생기면 용역업체에서 대신 책임을 지지만 직접 고용하게 되면 자칫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각종 법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경비 인원을 줄이면 서비스 질만 떨어진다’ ‘가혹한 해고 대신 상생방안을 찾자’는 논란이 있었지만 전체 310가구 주민들은 투표를 통해 58%의 찬성으로 직접 고용하는 안을 선택했다. 이 아파트 남승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아파트 경비원들과 갈등을 빚는 사례가 많은데 우리 아파트는 오히려 더 돈독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성북구는 이달까지 다른 아파트들의 경비원 고용 실태를 조사하고 두 아파트를 포함한 성공사례를 홍보할 계획이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아파트 경비원#석관동 두산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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