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 저술 한글교과서, 집안의 보물… 회고록엔 ‘한글이 최고 문자’ 애정 듬뿍”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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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외교자문 美 헐버트 박사에게… 9일 ‘한글교육 공로’ 금관훈장 수여
증손자 킴벌 헐버트씨 대리수상

“증조부의 소원이 무엇이었냐고요? 한국과 관련이 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한국은 조국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가 미국인 킴벌 헐버트 씨(36)로부터 흘러나왔다. 그는 한글날(9일) 경축식에서 증조부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를 대신해 금관문화훈장을 받기 위해 8일 한국을 찾았다. 국내 문화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외국인이 받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미국 버몬트 주 출신인 헐버트 박사는 1886년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한국 땅을 밟은 뒤 외교자문관으로 고종황제를 보좌했다. 1905년 을사늑약 후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미국을 방문했으며 1907년에는 이준 열사 등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로 참석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1950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이 때문에 헐버트 박사를 독립에만 기여한 인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1890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士民必知)’를 저술하는 등 한글 교육에 이바지한 공로도 크다. 이 점이 인정돼 금관문화훈장을 받게 된 것.

“어릴 때 집에서 ‘사민필지’를 비롯해 증조부가 남긴 여러 기록물을 봤습니다. 아버지가 ‘아주 중요한 책’이라며 소중히 보관하셨거든요. 저는 이 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커서야 알게 됐어요. 어릴 적 많은 한국인이 뉴욕에 있는 집에 찾아와 증조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킴벌 씨는 “특히 증조부가 가족들에게 남긴 회고록을 통해 한글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 회고록에는 한글이 다른 나라 글자 200개와 비교해도 가장 우수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정말 한글을 사랑하신 것 같아요. 그 근원에는 한글을 통해 한반도에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한국이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헐버트 박사가 생전 가족들에게 말했던 소원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였어요. 첫 번째는 고종황제가 해외 은행에 맡겼다가 일본에 빼앗긴 거액의 내탕금(황실 재산)을 되찾는 거예요. 둘째, 이게 더 중요합니다. 바로 통일이에요. 증조부는 자주 말하셨어요. ‘한국인은 집중력과 열정이 강한 사람들’이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요. 저 역시 한국의 통일을 믿습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헐버트#한글날#킴벌 헐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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