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죽을 사람이라도… 오늘 죽이면 그건 살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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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죽여달라’는 말기암 아버지 숨지게 한 남매에 7년-5년刑 선고

말기 암으로 고통받던 아버지를 살해한 남매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의정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한정훈)는 3일 아버지 이모 씨(57)를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아들(28)에게 징역 7년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딸(32)에게는 징역 5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살인 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어머니(56)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이날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배심원들은 이들의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대부분 법정 최저형인 징역 1년 3개월에서 3년형을 건의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형량을 높였다. 재판부는 “내일 죽는 사람, 사형수라 할지라도 오늘 그를 죽이면 살인”이라며 “돌아가신 분이 피고인들에게 ‘죽여 달라’는 말을 했다 해도 병상에서 한 말은 진지한 뜻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모두 전과가 없으며 아들과 딸이 모두 실형을 받은 점을 감안해 일반 살인죄보단 형량을 낮추고 딸을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이들 남매는 지난해 9월 시한부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 이 씨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여 달라’고 호소하자 어머니와 가족회의를 거쳐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변론을 맡은 신현호 변호사는 “고통 속에서 임종에 다다른 아버지가 죽여 달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상황에서 피고인들에게 적법한 행위를 기대할 수 없다”며 ‘살해’가 아닌 ‘안락사’라고 주장했다.

가족들도 눈물을 흘리며 선처를 호소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극심한 고통을 진통제에만 의존해 하루하루 버티는 걸 보며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라도 아버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딸과 아내도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최후 변론을 대신했다. 증인으로 나온 둘째 딸(31)도 “아버지께서 편안하게 해 달라, 죽는 약을 달라고 하셨다”고 밝히며 “(가족들이) 해서는 안 될 죄를 지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으니 선처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숨진 이 씨는 지난해 1월 말기 뇌암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사건 당시 검안 의사는 암으로 인한 사망으로 결론 내려 영원한 비밀로 남을 뻔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죽인 죄책감으로 괴로워한 아들이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는 작은누나에게 범행을 알리고 자살을 기도했다가 “남동생이 자살할 것 같다”는 작은누나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붙잡힌 뒤 범행을 털어놓았다.

의정부=조영달 dalsarang@donga.com
백연상 기자
#안락사#살인#말기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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