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 씨(57)는 1일 오후 9시 23분 서울 강남구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인근 제과점에 들어와 119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이마에는 피가 흘렀다. 그는 구급대가 도착해 응급처치를 하려 하자 갑자기 주방으로 뛰어 들어가 길이 43cm짜리 칼 두 자루를 양손에 쥐고 나오더니 매장 구석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 A 씨(48·여) 바로 옆에 앉아 인질극을 벌였다.
김 씨는 경찰이 도착하자 왼손에 든 칼을 자기 목에 대고 오른손의 칼로 테이블을 툭툭 치며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미행해 죽이려 한다” “위협을 느껴 불안하다” “나를 한 방에 죽여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경찰 10여 명이 제과점 안에 들어섰지만 섣불리 움직였다간 A 씨가 다칠 우려가 컸다.
‘범죄사냥꾼’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해 유명해진 이대우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1팀장(48)은 현장 사진을 찍어 서울지방경찰청 인질협상팀에 보내고 전화로 조언을 청했다. 인질범과의 친밀감 형성이 중요하다는 조언에 이 팀장은 제과점 안에 있던 경찰 일부를 내보내고 여경인 김은지 경장(32)을 불러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프로파일러를 꿈꾸는 김 경장은 김 씨에게 “이마에 피는 왜 나는 건가요”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으며 대화를 유도했다. 곧이어 여성 최초의 강력계장인 박미옥 강남서 강력계장(46)이 합류해 김 씨를 안정시켰다.
처음엔 “너희들도 나를 죽이려 한다”며 경계하던 김 씨는 세 경찰관의 끈질긴 설득에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박 계장이 “당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아무 죄 없는 이 분(A 씨)도 당신처럼 고통을 느껴야겠느냐”고 설득하자 김 씨는 2일 오전 0시 13분 A 씨를 풀어줬다. 이후 김 씨가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하자 이 팀장은 “같이 담배 피우면서 이야기하자”며 4년 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었다. 김 씨는 곧 양손에 쥐고 있던 칼 두 자루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자수 의사를 밝혔다. 2일 0시 24분 제 발로 나오는 듯 했던 김 씨는 갑자기 테이블에 있던 포크를 집어 들고 자신의 목을 찌르려다 이 팀장에게 제압당해 끌려나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김 씨에 대해 2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감금)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김 씨가 “4년 전부터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왔고 지난해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미뤄 정신질환을 앓는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4월 운영하던 의류업체가 망해 찜질방을 전전하며 살아온 김 씨는 식당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지만 지난달 식당 일마저 그만두게 됐다. 김 씨는 1일 오후 9시 15분 제과점 인근 찜질방에서 나와 건물 외벽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받은 뒤 제과점에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