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高도 女風 축구가 사라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5일 03시 00분


학생들은 몇 달 전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과별로 유니폼을 맞추고 연습경기를 하는 가운데 열기가 점차 뜨거워졌다. 체육대회를 앞둔 10년 전 서울 A외국어고의 풍경.

그런데 요즘엔 다르다. 종목 구성부터 달라졌다. 남학생 수가 줄면서 대표종목이던 축구가 없어졌다. 학생들의 관심도 크게 시들해졌다.

이 학교 양모 양(고2)은 “여학생 대부분은 체육시간에 비가 오기만 바란다. 체육대회 대신 장기자랑이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의 B외고에선 최근 졸업생 선배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행사를 가졌다. 강당에 모인 학생 가운데 10명 중 8명은 여학생. 그나마 있는 몇몇 남학생 가운데 적극적으로 질문하거나 메모하는 학생은 드물었다. 대부분 뒷자리 끝줄에서 먼 산만 바라보거나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외국어고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입시교육기관인 하늘교육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경기권 14개 외고의 1학년 여학생 비율은 2010년 63.1%에서 2011년 65.6%, 2012년 66.9%로 늘었다. 올해는 68.8%로 증가했다. 서울 소재 6개 외고만 놓고 보면 올해 1학년 여학생 비율은 77.5%에 이른다. 10명 중 7, 8명이 여학생인 셈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 전반적으로 유행처럼 불고 있는 여풍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일형 대원외고 교감은 “중학교에서 여학생 학력이 꾸준히 향상되면서 시험을 통해 입학하는 특목고 특성상 여학생 비율이 높아졌다”고 했다.

몇 년 전 바뀐 외고 입시제도도 여학생 비율 상승을 이끌었다. 외고는 2010학년도부터 자기주도학습전형으로 모집 방식을 바꿨다. 기존 영어듣기평가, 지필고사, 구술면접 등을 통한 선발 대신 내신, 자기계발계획서, 면접 등을 중심으로 학생을 뽑았다. 이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이에 강한 여학생들이 유리해진 것이다.

여학생이 늘어남에 따라 학교마다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정인석 대일외고 교사는 “일단 교육 과정이나 관련 매뉴얼, 학생들에 제공하는 서비스 자체를 여학생들 특징 및 성향에 맞춰 바꾸느라 고심 중”이라고 했다.

서울의 C외고는 전에는 남학생들을 앞 번호에 배치했으나 여학생이 더 많아지면서 앞 번호에 여학생들을 배정했다. 각종 동아리 유형이나 활동 방식도 여학생 위주로 짰다. 남자 화장실이 많던 시절도 이젠 옛날이야기. 대부분의 외고가 여학생 화장실을 늘리거나 확장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김예윤 인턴기자 고려대 역사교육과 4학년
#외국어고#체육대회#여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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