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보조금 1700억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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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억 빼돌려 포르셰 타고… 탈북 직업훈련비 6억 꿀꺽
정부 지원금 유용한 3349명 기소… 검경 “상시 단속”

노인 인구가 많은 경북 의성군은 종합노인복지시설인 ‘의성건강복지타운’을 약 10만 m² 규모로 짓기로 하고 2010년 10월 착공했다. 1, 2차 사업비 240억 원 가운데 국가와 의성군이 162억 원을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시행사로 참여한 한 건설사 컨소시엄이 78억 원을 부담하는 형태였다.

국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보조금은 횡령 등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공사 진행 상황에 맞게 단계적으로 지급된다. 그러나 시행사 대표 A 씨(44)는 공사 진행 상황을 부풀려 미리 보조금을 타내거나 본인이 설계회사를 세운 뒤 설계 용역비를 부풀려 보조금을 받고 차액으로 비자금을 만들었다.

A 씨가 이렇게 빼돌린 보조금은 총 18억 원. 사실상 정부 보조금으로 설립해 운영한 시행사 법인자금 37억 원까지 횡령했다. A 씨는 횡령한 돈의 일부로 서울 강남의 고급 주상복합아파트를 임차하고 고급 외제 차량인 ‘포르셰’를 리스해 타고 다니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횡령한 돈 중 4억 원으로 땅을 사기도 했고 4억 원은 생활비로 탕진했다. 횡령 사실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보조금 담당 공무원인 B 씨(47)에게 3500만 원의 뇌물을 주고, 유흥주점에서 향응도 제공했다.

그러나 A 씨의 횡령 혐의 등은 감사원 감사에서 꼬리가 밟혔다. 대구지검은 감사원의 의뢰를 받아 수사한 끝에 A 씨와 B 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처럼 국가 또는 지자체가 특정 분야를 보호·육성하거나 기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지급하는 보조금이 1700억 원이나 유용된 것으로 검경 수사 결과 집계됐다. 대검찰청과 경찰청은 올해 6월부터 △보건 복지 △고용 △농축수산 △연구개발 △문화 체육 관광 분야 보조금의 지급 실태에 대한 수사를 벌여 보조금을 불법으로 지급받거나 유용한 3349명을 입건해 이 가운데 127명을 구속 기소하고 322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8일 밝혔다.

보건 복지 분야 부정 수급액이 405억 원으로 5개 분야 가운데 가장 많았다. 특히 서울 송파경찰서는 보육교사와 원생을 허위 등록해 보조금 94억 원을 빼돌린 어린이집 원장 등 182명을 적발해 검찰로 송치했다.

고용 분야도 보조금 유용 사례가 적지 않았다. 경북지방경찰청은 탈북자 142명에게 허위 수료증을 발급해주고 정부로부터 직업훈련장려금 6억2240만 원을 지급받아 빼돌린 직업훈련원장을 적발했다. 청주지검 충주지청은 국가가 청년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지급하는 창업 지원금 3억8800만 원을 빼돌린 대학교수 등 46명을 적발해 6명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과 경찰은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을 ‘눈먼 돈’으로 인식하는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집중 단속 기간을 연장하는 한편 상시 단속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대검 관계자는 “이번 수사는 검찰과 경찰의 협업 체제가 잘 구축돼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앞으로 상시 단속할 것”이라며 “유사 보조금을 이중 지급받는 사례가 없도록 보조금 통합관리 시스템을 만들자는 제도 개선도 건의했다”고 밝혔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보조금 횡령#의성건강복지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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