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례 보험왕은 ‘뒷돈의 여왕’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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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업자 비자금 500억원 중 일부… 장기 비과세상품 투자 유치
200억원 보험가입 유지 위해… 3억5000만원 리베이트 제공

“진정한 채움은 가득한 것이 아니라 적당한 것이다. 가득 채우는 것은 오히려 매우 불안정한 것이다.”

총 11회 ‘보험왕’에 오른 S생명보험 설계사 Y 씨(55·여)가 보험 영업의 비결을 다룬 자신의 저서에 쓴 글이다. 2004년 4월 Y 씨는 이미 4년 연속 보험왕에 오른 보험업계의 ‘전설’이었다. 문제는 2001년부터 Y 씨가 관리하고 있던 인쇄업체 대표 이모 씨(69)의 보험 만기가 속속 도래하고 있다는 것. 이 씨는 비과세 저축성 보험 150여 개에 200억 원을 투자한 Y 씨의 가장 큰 고객이었다.

이 씨는 K생명보험에도 200억 원가량을 투자하고 있었다. ‘보험왕’ 타이틀을 유지하고 고객을 붙잡기 위해 Y 씨는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다. 경찰에 따르면 Y 씨는 2005년 4월 19일 5000만 원이 들어 있는 통장을 이 씨의 아내(63)에게 건넸다. 5, 6월에도 1억3000만 원을 입금했다. 고액 보험에 가입해 주는 대가로 건넨 현금 리베이트다.

이 씨의 보험을 관리하던 K생명보험 설계사 G 씨(54·여)는 이 씨의 아내에게서 “Y 씨는 이렇게 해주는데 그쪽은 뭐 없느냐”라는 말을 들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G 씨도 질 수 없었다. 2005년 10월 30일 1억5000만 원이 들어 있는 통장을 이 씨 아내에게 건넸다. G 씨도 자신의 계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의 리베이트 경쟁은 계속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2005∼2012년 보험 가입 대가로 6차례에 걸쳐 3억5000만 원을 건넨 혐의(특별이익 제공) 등으로 Y 씨를 13일 입건했다. G 씨도 2005∼2009년 2억2500만 원을 입금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그러나 Y 씨는 이날 변호사를 통해 “제공한 금품은 이 씨의 세무조사 비용 보전을 위해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3년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한 Y 씨는 S생명보험 전무급 명예본부장이 됐다. 2000∼2009년 10년 연속 ‘보험왕’이었고 2013년에도 보험왕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G 씨도 K생명보험 ‘올해의 보험왕’에 올랐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가입 실적이 수당과 직결되기 때문에 보험설계사들이 고액 가입자를 대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사례가 일부 있다”고 말했다.

두 설계사의 고객인 이 씨가 보험을 이렇게 많이 가입한 것도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대구와 인천에서 20여 년간 인쇄업체를 운영하며 회사 자금을 횡령하거나 무자료 거래를 통해 세금을 내지 않는 수법으로 500억 원 상당의 불법 자금을 조성했다. 이 씨는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이 중 390억 원을 Y 씨와 G 씨를 통해 장기 저축성 비과세 보험 상품에 투자했다. 경찰은 이 씨를 횡령혐의로 입건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비과세 보험 상품은 만기에 보험금을 받을 때에도 이자 소득이 세무 당국에 통보되지 않는 점을 악용해 대규모 불법 자금을 관리하며 당국의 추적을 피하는 수단으로 암암리에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보험왕#리베이트#비과세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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