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이 인터넷도박 최대무기… “난 줄 모르겠지” 연예인 유혹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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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안-앤디-붐도 조사… 연예인 불법 스포츠 도박 일파만파

연예인 불법 스포츠 도박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윤재필)는 사설 스포츠토토 사이트에서 거액의 베팅을 한 혐의로 인기그룹 ‘H.O.T’ 출신인 가수 토니안(본명 안승호·35) 씨와 ‘신화’ 앤디(본명 이선호·32), 방송인 붐(본명 이민호·31) 씨를 지난달 소환조사했다고 11일 밝혔다. 검찰은 최근 같은 혐의로 방송인 탁재훈 씨(45)를 소환한 데 이어 10일에는 개그맨 이수근 씨(38)를 조사하는 등 유명 연예인들을 잇따라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이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도박에 참여하게 된 경위, 도박 횟수와 액수 등을 추궁했다.

안 씨 등은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축구 경기의 승리팀을 예측해 문자메시지로 돈을 거는 이른바 ‘맞대기’ 방식으로 한 번에 수십만∼수백만 원씩 모두 수억 원의 돈을 걸고 도박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맞대기 도박은 승리 팀을 맞힐 경우 배당금을 지급받고 질 경우 베팅액을 운영자에게 송금하는 후불제 도박 형식. 검찰은 이들 외에도 스포츠 도박을 한 정황이 있는 연예인들을 추가로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수사 대상자로 거론되는 연예인은 가수와 개그맨 등 10여 명에 달한다. 검찰은 일각에서 거론되는 개그맨 정준하, 지석진, 가수 문희준 씨에 대해서는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공식 부인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2013 불법 시장 조사 현황’에 따르면 국내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의 규모는 연간 13조∼39조 원에 이른다. 합법인 스포츠토토 시장 규모가 2조 원 남짓인 것에 비해 최대 20배 가까이 큰 규모다. 전문가들은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 이용자만 연간 140여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11일 온라인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 현황을 취재한 결과 베팅액 제한, 성인 인증 같은 제약이 전혀 없이 도박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한 번에 많은 돈을 잃으면 일정 금액을 돌려주거나 매일 추첨을 통해 돈을 주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도박으로 끌어들였다. 어느 곳에도 중독을 막을 수 있는 ‘브레이크’는 없었다.

○ 도박으로 끌어들이는 치명적 유혹

‘24시간 실시간 스포츠 베팅, 가입 즉시 인센티브 제공.’

인터넷 개인방송사이트에서 영국 프리미어리그, 이종격투기 등 해외 스포츠를 즐겨 보는 이모 씨(29)는 동영상 옆의 대화창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을 통해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처음 접했다. 이 씨는 “한 경기가 진행되는 사이에도 수십 개의 스포츠 도박 홍보 글이 올라와 호기심으로 시작하게 됐다”며 “베팅 상품이 다양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베팅을 했다”고 했다.

온라인 불법 스포츠 도박은 합법적인 스포츠토토와 운영 방식에 큰 차이가 없지만 24시간 베팅이 가능해 시간 제약 없이 이용자들을 유혹한다. 온갖 종류의 베팅 상품을 개발해 내걸고 승패도 짧은 시간 내에 결정 나게 만든다. 스포츠토토의 1회 베팅 상한액이 10만 원인 반면 불법 온라인 도박의 베팅액은 게임당 300만 원까지 치솟기도 한다. 이 씨는 “불법이지만 단속에 걸릴 위험이 적다는 인식이 퍼져 있어 스포츠 도박에 빠져들기가 훨씬 쉽다”고 했다. 이 씨가 불법 스포츠 도박으로 3개월 사이 잃은 돈은 3000만 원에 달한다.

○ 익명성 보장, 접근성 증가가 확산 원인

전문가들은 온라인 불법 스포츠 도박 확산의 주된 이유로 익명성을 꼽는다. 스포츠토토는 회원 가입자와 환급 계좌의 이름이 같아야 베팅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불법 스포츠 도박은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없다.

전문가들은 “스포츠를 대상으로 하고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베팅에 참여할 수 있어 불법이라는 인식 없이 게임처럼 쉽게 빠질 위험이 크다”며 “스포츠 도박에 손댔다가 포커 바카라 등 다른 온라인 도박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고려대 산학협력단 ‘불법 도박 실태 조사’에 따르면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 중 70% 정도가 ‘먹튀’ 사이트로 추정된다. 이들은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다가 자금이 부족해지면 사이트를 폐쇄해 버리거나 일부 참여자가 고액의 배당에 당첨될 경우 해당 ID를 삭제하거나 참여자의 IP를 차단하기도 한다. 불법 도박에 참여한 당사자도 신고할 경우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는 1개월마다 주소를 바꾸거나 중국이나 동남아 등 해외 서버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베팅금 관리도 대포통장으로 이뤄져 단속이 쉽지 않다. 도박규제네트워크 김규호 사무총장은 “현재 스포츠 도박 사이트 폐쇄는 방통위가 결정하고 있는데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불법 신고가 들어와도 차단까지 길게는 3개월씩 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스포츠 도박에 베팅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사이트 운영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서동일 dong@donga.com·장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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