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 비웃는 ‘짝퉁 피라미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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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샤넬 제조자가 밝힌 ‘짝퉁 세계’

“‘짝퉁’을 만든다고 하니 판매책이 샤넬 가방 모조품을 하나 보내줬습니다. 가짜를 분해해 더 진짜 같은 가방을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요. 사실 진품을 본 적이 없어 제가 만든 가방이 얼마나 진짜 같은지는 모르겠습니다.”

모조품 제조업자 김모 씨(51)는 약 1년 6개월 동안 짝퉁 중에서도 값비싼 샤넬 가방의 짝퉁만 만들었다. 봉제공장 밀집지역인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82.5m² 크기의 공장을 차리고 직원 2명과 하루 10∼15개를 만들던 그는 9일 특허청 상표권 특별사법경찰대에 검거됐다.

이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진품을 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현장에서 가방을 살펴본 전문가들은 “외관만으로는 진품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고 평가했다. 특허청 측은 그의 제품을 상품(上品)을 뜻하는 ‘A급’으로 추정했다.

15세 때부터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팔리는 가방을 만든 김 씨에게 짝퉁 가방 제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모조 가방을 분해한 다음에 비닐로 똑같이 한번 만들어봤어요. 단번에 맵시가 나오더군요. 그래서 곧바로 진짜 원자재를 갖고 생산했어요.”

샤넬 가방 진품
샤넬 가방 진품
그가 만드는 짝퉁 샤넬 가방 중 대표 제품인 ‘2.55 클래식미디엄’ 정품 가격은 백화점에서 612만 원이다. 모조품은 5∼7% 수준인 30만∼40만 원에 팔린다. 김 씨는 디자인에 따라 가방 한 개에 5만∼7만 원을 받고 판매책에게 납품한다. 직업의 속성상 현찰 결제가 원칙이다. 짝퉁 샤넬 가방을 만들면서 월수입은 100만 원가량 늘었다고 한다.

김 씨는 “짝퉁 유통구조의 80%를 일종의 도매상인 판매책이 장악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판매책이 김 씨 같은 제조업자들에게 원자재를 대주면 제조업자는 주문량만큼 만들어 납품한다. 그러면 판매책은 여러 단계를 통해 소매상에 넘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류업계에서 1차 협력업체들이 2차 협력업체에 원자재를 공급하고 제품을 납품받은 뒤 대기업에 넘기는 임가공 구조와 비슷하다.

짝퉁 가방이라도 원단인 양가죽은 이탈리아에서 수입해 온다고 했다. 0.09m²에 3000원 미만이면 저가품이고 3500원이면 쓸 만한 정도, 최상품은 7000원 정도라고 그는 설명했다. 샤넬 로고 모양 버클은 동대문에서 2000원 정도에 살 수 있다. 크기, 도금의 품질, 철의 종류 등에 따라 100원부터 시작한다. 그는 “판매책과 원자재 판매상을 이어주는 브로커들이 따로 있다”고 전했다.

브로커가 존재하는 이유는 짝퉁 유통구조가 점조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만 해도 ‘프라다’ 하면 ‘누구’라고 다 알았죠. 제조업자들은 직원도 40∼50명씩 뒀습니다. 그런데 단속이 심해지면서 다 흩어졌어요. 한 명 걸리면 줄줄이 잡혀가니 이젠 서로 모르고 지냅니다.”

김 씨는 “원자재를 받을 때마다 다른 사람이 오고 때론 퀵서비스로 보내 오기도 한다”며 “내가 만든 가방이 어디에서 얼마에 팔리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른바 명품 열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사람들이 명품에 미쳐야 명품을 못 사는 사람들이 짝퉁을 사고 우리 같은 사람들도 먹고사는 것 아니겠냐”며 씁쓸하게 웃었다.

특허청 특별사법경찰대는 9일 현장에서 가방 220개와 부속품 7100개, 원단 7롤, 도면 6개 등을 압수했다. 진품 시가로 치면 10억 원이 넘는다. 이런 짝퉁 제조업자들은 대부분 벌금형을 받는다. 김 씨는 인터뷰 내내 “큰애가 고2, 작은애가 중3인데 아빠가 전과자가 돼 큰일”이라며 어두운 표정이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단속#짝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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