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도(大盜)'로 불렸던 조세형(75)이 좀도둑질을 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1970¤1980년대 부유층과 유력인사를 상대로 신출귀몰하면서도 대담한 절도 행각을 벌여 '큰 도둑'이라 불렸다. 또 그는 훔친 금품을 가난한 사람에게도 나눠줘 '대도' 혹은 '의적'이란 칭호도 얻었다.
그런 그가 3일 오후 8시 30분께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고급빌라를 털다 현장에서 잡힌 것. 범행 수법도 어설프기 그지 없었다. 빈집의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다. 당연히 주변의 이목을 끌었다.
모자와 마스크를 쓴 남자가 불이 꺼진 1층 집 베란다에서 긴 쇠막대로 유리창을 깨는 것을 본 이웃주민은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빈집에 들어가 롤렉스시계 2개와 금목걸이 등 수천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주워담던 '좀도둑' 조 씨는 출동한 경찰과 맞닥뜨리자 만년필을 들고 저항하려다 이내 포기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전설적인 도둑의 초라한 말로였다.
어느덧 70대 중반의 노인이 된 그는 4일 오전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초라한 행색으로 쇠고랑을 찬 채 경찰 조사를 받았다.
조 씨는 몰려든 취재진 앞에서 "아마추어도 하지 않을 짓을 했다"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중간 중간 '아이고', '나 이거 참'이라는 탄식도 쏟아냈다. 너무나 수치스럽고 죄송하다고 하다면서도 돈이 급해 우발적으로 벌인 범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무실이 없는 상태에서 선교활동을 1년간 하다 보니 힘들었다"며 "전처가 마련해 준 선교사무실 보증금 3000만 원을 사기당해 날리고 나니 이성을 잃었다"고 밝혔다.
조 씨는 서울역 노숙자 선교회에서 부흥강사로 일하는 등 최근 5¤6개월간 선교사활동을 해왔으며 며칠 전에는 대구의 한 교회에서 강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선교활동 대가로 교회로부터 한 달에 100만원 가량 사례비를 받았지만 선교사업을 할 수준은 못됐다. 어서 사무실을 차려야 사회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짓을 했다"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왜 서초동의 빌라를 털었느냐는 질문에는 "옛날에도 그냥 돌아다니다가 잘 산다싶은 집이면 즉흥적으로 들어갔다"며 "서초동에 가보니 그 빌라가 눈에 띄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기독교 신자로서 이런 범행을 한 데 대해선 "죽고 싶다"라는 말까지 했다.
경찰은 조씨가 범행에 이용한 도구인 속칭 '빠루(노루발못뽑이)' 두 자루 중 하나를 미리 종묘 근처에서 사들인 것으로 보아 계획적인 범행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특수절도 등 전과가 10범인 조씨를 특가법상 상습절도 혐의로 입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조씨는 과거 부유층 저택만 골라 털어 금품 일부를 노숙자 등에게 나눠줘 '의적'으로도 불렸다.
1982년 붙잡혀 15년간 수감됐다가 출소한 그는 이후 종교인으로 변신해 새 삶을 사는 듯했다. 선교활동하다 만난 여성과 결혼하고 경비업체 자문위원으로도 일했다.
그러나 2001년 선교차 들른 일본 도쿄에서 절도행각을 벌이다 붙잡히기도 했고 2005년에는 서울 마포구의 한 치과의사 집을 털다가 철창신세를 졌다.
2011년에는 금은방 주인과 가족을 위협해 금품을 빼앗은 혐의(강도상해)로 구속됐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70대 고령에 오른팔과 다리가 불편한데다 무거운 처벌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범행을 했을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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