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프렌디’의 자격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2일 03시 00분


“아빠, 이런 말·행동 진짜 싫어요”

《 가정에서의 자녀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생업에만 집중하고 자녀와는 좀처럼 소통이 없던 전통적 아버지상에 큰 변화가 요구되는 추세다. 최근 큰 인기를 모은 TV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7번방의 선물’에 등장하는 아빠들처럼 자녀와 친구처럼 소통하는 이른바 ‘프렌디(Frendy·Friend+Daddy)’를 신세대 자녀는 원하고 있는 것.

하지만 보통 40∼50대인 아빠들이 성급하게 자녀에게 다가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녀로 하여금 거리감,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부모에게 애정과 반항심을 동시에 갖는 사춘기 자녀에게는 아빠의 ‘친근함’의 표현도 ‘비호감’으로 비칠 수 있다. 자녀들이 말하는 ‘정말 싫은 우리 아빠의 말과 행동’에는 무엇이 있을까.

[‘깔때기’형] 시작은 안부 묻기,결론은 걱정 훈계?


프렌디가 되려는 아빠라면 자녀의 방에 자주 들러 근황과 고충을 묻는 것은 기본. 하지만 자녀의 학교생활과 공부 관련 이야기를 듣다보면 결국 대화는 훈계나 설교가 되기 쉽다.

중학 2학년 전모 양(14·서울 서대문구)은 “얼마 전 저녁을 먹던 중 아빠가 ‘오늘 학교에서는 별일 없었냐’고 물어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술래잡기한 얘기를 했는데, 아빠는 ‘학교에서 뛰어다니면 새 담임선생님에게 이미지가 안 좋게 비칠 수 있다’고 갑자기 주의를 줬다. 황당했다”고 말했다.

아빠가 엄마처럼 자녀의 공부와 성적을 챙기는 ‘정성’을 발휘할 때도 자녀가 심한 거부감과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다.

중학 3학년 임모 양(15·서울 은평구)은 “아빠는 아이돌 가수의 얼굴과 이름 외우기를 즐길 정도로 나와 소통이 잘 되지만 TV에서 교육 관련 뉴스나 정보만 나오면 갑자기 서울 강남지역의 학생과 나를 비교하며 공포심을 조장한다”면서 “엄마들의 모임에까지 나가 입시정보를 듣고 온 뒤 나에게 일장 연설을 하는 아빠의 ‘깨알 정성’은 정말 ‘사절’”이라고 했다.
[‘과잉표현’형] 공공장소에서 “우리 아들∼” …사춘기 자녀 ‘한숨’

학생들이 가장 거리감을 느끼는 대표적 아빠는 ‘몰라’ ‘글쎄’ 식의 대답으로 일관하는 무관심형 아빠. 그렇다면 반대로 자녀에게 애정과 사랑을 듬뿍 전하는 아빠는 무조건 ‘환영’일까. 답은 ‘노(No)’. 특히 사춘기 자녀에게 지나친 애정 표현을 하는 것은 자녀가 아빠에게서 더 도망가게 만들 수 있다.

대학교수 조모 씨(45·서울 강남구)는 사춘기에 접어든 초등 6학년 아들(12)의 볼에 ‘뽀뽀’를 할 정도로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는 경우. 조 씨와 함께 한 달에 두세 번 공중목욕탕에 간다는 아들은 “아빠가 나의 머리를 직접 감겨주거나 성기와 가슴을 만지며 장난을 칠 때가 제일 싫다”고 했다.

아들은 “친구들 앞에서 아빠가 손으로 내 볼을 비비는 행동을 해 몹시 창피했다”면서 “아빠와 나 사이의 애정을 친구들에게 티 나게 보여주려 했던 아빠의 마음은 알지만 나를 여전히 아기로 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유행도태’형] 아빠의 때늦은 유행어, 자녀들 ‘숨고 싶어’


‘센스’ 있는 프렌디가 되려는 아빠들이 인기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 한두 개를 자녀와의 대화에서 사용하는 것은 흔한 경우. 하지만 이미 유행이 지난 지 오래된 유행어를 반복하는 것은 최신 트렌드에 민감한 자녀들을 외려 부끄럽게 만든다. 만약 아빠가 공공장소에서 ‘고뢔∼?’ 같은 ‘철 지난 유행어’를 큰 소리를 말하면서 자녀의 호응을 기대할 때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다’는 게 학생들의 생각.

중학 3학년 윤모 양(15·경기 동두천시)은 “요즘 아빠에게 무엇을 물을 때마다 ‘궁금해? 궁금하면 500원!’이라며 유행어를 자주 말씀하신다. 웃음은 나오지 않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하다. 힘들다”고 했다. 상당수 아빠들은 자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프렌디가 되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친구’와 ‘어른’ 사이에서 적절한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중2 딸, 초3 아들을 둔 직장인 아빠 전모 씨(45·서울 서대문구)는 “아이들과 드라마나 ‘런닝맨’도 같이 챙겨보지만 젊었을 때보다 유머 감각이 많이 떨어져 신세대 자녀를 실제로 웃기는 것은 정말 어렵다”면서 “자녀의 얘기를 편안히 들어주는 것이 친구 같은 아빠의 역할인 줄 알면서도 ‘옳고 그름’부터 따지거나 교육적으로 무언가 가르쳐주려는 예전의 ‘아빠’ 본능을 버리는 것도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이강훈 기자 ygh8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