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노모와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동생을 홀로 10여 년간 돌보다 직장과 가정까지 잃었는데, 화마에 목숨까지 잃다니….”
8일 낮 광주 광산경찰서 형사계 사무실. 화재로 숨진 유모 씨(57)의 셋째동생(51)이 눈물을 훔치며 유족 조사를 받고 있었다. 셋째동생은 “모든 것을 희생한 형이 화마로 쓰러졌다”며 안타까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는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유 씨의 막냇동생(40)이 형의 죽음도 모른 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8일 오전 8시 40분 광주 광산구 선암동의 한 주택에서 유 씨가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경찰은 유 씨가 깔고 자던 전기장판이 과열되면서 불이 나 질식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 씨는 7일 오후 6시부터 집에 놀러온 이웃 박모 씨 및 막냇동생과 3시간 동안 술을 마신 뒤 잠들었다.
광주의 한 중학교 수학교사였던 유 씨는 10여 년 전 치매에 걸린 70대 노모를 병 수발할 사람이 없자 교단을 떠났다. 7남매 중 둘째인 유 씨가 노모 병 수발을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자 부인이 반발하면서 별거생활이 시작됐다. 두 아이도 부인이 맡아 키웠다. 노모는 1년 만에 숨을 거뒀다.
유 씨는 이후 선암동 어머니 소유 집으로 들어와 정신지체 장애인인 막냇동생을 돌봤다. 유 씨 부인은 “동생까지 돌보겠다면 가족은 포기하겠다는 것이냐”고 따졌다. 유 씨는 부인과 의견 충돌을 거듭하다 3년 전 이혼했다고 한다. 유 씨는 아들 결혼식에 막냇동생을 데려가려 했지만 부인이 반대해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웃 노모 씨(58)는 “유 씨는 혈육을 돌보기 위해 직장, 가정까지 희생했다”며 “유 씨에게는 늘 ‘효자’ ‘착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고 말했다.
화마로 형을 잃은 막냇동생은 광주의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생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유 씨의 희생은 희미해져 가고 있는 부모 공경과 형제 간 우애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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