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현장 블동 600만원” 피해자 피말리는 악덕 상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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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당사자-목격자 연결 중개사이트 성업

한 교통사고 목격자가 웹사이트에 자신의 블랙박스에 녹화된 4중 추돌 사고 동영상을 600만 원에 팔겠다는 글과 영상파일을 올렸다. 인터넷 화면 캡처
한 교통사고 목격자가 웹사이트에 자신의 블랙박스에 녹화된 4중 추돌 사고 동영상을 600만 원에 팔겠다는 글과 영상파일을 올렸다. 인터넷 화면 캡처

“뺑소니 ‘블동(블랙박스 동영상)’을 팔면 최소 몇백만 원은 받을 수 있어요.”

새로 산 차에 블랙박스를 설치하려던 김모 씨(51·회사원)는 블랙박스 판매 업체로부터 이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운전 중 사고 현장을 목격하면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동영상을 찾아 인터넷에서 판매하라는 내용이었다. 업체 직원은 “사고 규모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데,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사고 영상을 대신 인터넷 판매 사이트에 올려줄 수도 있다”고 했다.

○ 현수막은 가고 ‘블동’ 시대로

택시, 버스는 물론 일반 차량까지 블랙박스를 장착해 판매대수가 150만 대에 육박하면서 이 장비가 교통사고 목격자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교통사고 당사자들이 목격자를 찾기 위해 사고가 난 도로 인근에 현수막을 걸고 무작정 기다렸지만 이젠 현장화면이 담긴 블랙박스 동영상을 찾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사고 장면이 담긴 영상은 과실 여부를 정확하게 가릴 수 있는 것은 물론 뺑소니범을 잡는 데도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사고 동영상 판매중개 사이트’까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들 사이트는 목격자와 사고 당사자를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식으로 운영된다. 목격자인 영상 판매자의 신원은 보장된다.

중개 사이트에서는 가벼운 접촉사고, 뺑소니는 물론 이유 없이 차량 문을 긁고 가는 이른바 ‘테러’ 영상, 길가에서 벌어진 범죄 영상까지 판매되고 있었다. 결제만 하면 이들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내려받을 수 있다. ‘블동’으로 불리는 이 영상은 10만∼수백만 원에 거래된다.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린 사람에게는 ‘부르는 게 값’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경남 창원시 마산에서 벌어진 4중 추돌 교통사고 목격자는 사고 동영상을 내주는 대가로 600만 원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한 중개 사이트에서는 △영상 품질은 좋은지 △결정적인 단서인지 △사건의 시작부터 목격했는지 △가해자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지 △차종을 알아볼 수 있는지 등의 체크리스트에 따라 값을 매기고 있다. 목격자가 없어 애태우는 피해자들도 사건 일시 장소를 알려주며 동영상을 구하는 글을 올려놓기도 한다.

최근 새로 문을 연 다른 사이트는 “첨단 영상처리 기법을 활용해 블랙박스 동영상에 찍힌 흐릿한 차량번호까지 판독해주겠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들 중개 업체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저작권 중개 업체’로 인증받아 법적 문제도 없다”고 밝혔다. 한 중개 사이트 대표는 “내려받은 동영상은 경찰서나 보험사에 교통사고 증거자료 증빙용으로 제출하면 골치 아픈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며 “영업용 택시는 물론 일반 자동차 차량들까지 제공자가 다양해지면서 회원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 우려

사고현장 동영상 매매가 활성화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일부 판매자들이 구매자의 약점을 이용해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 있어 “블랙박스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얼마 전 골목길에서 가벼운 접촉사고를 겪은 윤영경 씨(36)는 “인터넷에서 가까스로 영상을 구해 가해자로 몰릴 뻔한 상황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판매자가 내 사정이 급하다는 걸 알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러 절충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교통사고 처리를 담당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사고현장을 증명하기 위한 용도로 영상을 사고파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지만, 영상 보유자가 제출을 끝까지 거부한다면 경찰관이 연락처를 추적해 임의제출을 요구하거나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로 압수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채널A 영상] 뺑소니로 주민 숨지게 한 뒤 태연히 목격자 행세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뺑소니 블동#블랙박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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