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 부품업체 1곳이 7곳 보증서도 위조”

  • 동아일보

■ ‘짝퉁 부품’ 수사받는 업체들 “검증대행한다는 업체에 속았다”

영광 5, 6호기 등 원자력발전소에 ‘미검증 부품’이 납품된 것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한국수력원자력의 부품 납품업체 한 곳이 주도적으로 부품보증서를 위조해 다른 납품업체와 한수원을 속였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광주지검의 수사를 받고 있는 모 부품 납품업체는 8일 동아일보에 “역시 수사대상인 한수원 협력업체 K사로부터 받은 부품보증서를 그대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납품업체도 “K사를 통해 보증서를 발급받았다”며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한수원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업체는 K사를 포함해 모두 8곳이다.

○ ‘구멍가게 수준’ 사기에 다 속았나

복수의 부품 납품업체에 따르면 K사는 이들에게 “우리는 미국 검증기관의 업무를 국내에서 대행하는 곳이며 한수원에도 대행기관으로 등록돼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고 납품업체들은 이를 별 의심 없이 믿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설마 개당 1만 원짜리 퓨즈 500개를 납품하는데 누가 사기 칠 줄 알았겠느냐”며 “지금까지 10년 이상 원칙을 지키며 납품해 왔는데 K사, 한수원과 삼자대면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영광 원전에 갔다가 휴게실에서 K사 직원을 알게 됐다. 우리는 그들이 한수원의 오래된 협력업체라고 한 말을 믿은 죄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수원 관계자는 “해외 검증기관을 대행한다는 회사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한수원은 그런 대행기관을 등록해 관리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K사에 여러 차례 해명을 요청했으나 K사 측은 “내부적으로 논의가 끝나지 않았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한수원은 위조된 보증서가 2003년 납품분부터 발견됐다고 밝혔다. 납품업체들의 주장대로라면 399만 원가량에 불과한 보증서 발급비용을 노린 중소업체의 사기 행각에 한수원과 납품업체들이 10년이나 속아 왔다는 얘기다. 한수원 내부 구성원의 협조 없이 가능한 일인지, 해외 검증기관은 아무 관련 없이 명의를 도용당한 피해자인지도 검증해야 할 대목이다.

○ 너무 영세해 ‘유혹’에 빠질 수밖에

동아일보의 취재에 응한 납품업체들은 “이번 사건이 일어난 근본 원인은 관련 업계가 워낙 영세하고 납품체계도 허술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수사를 받는 업체 중에는 직원 한 명 없이 부부가 운영하거나 연 매출 20억 원, 직원 4명에 그칠 정도로 영세한 곳도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 해외 검증기관과 영어로 의사소통할 엄두라도 낼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납품업체들은 또 원전 부품 가운데 안전과 직결되고 값비싼 부품이 아닌 것은 입찰 참여에 별다른 자격제한이 없어 영세업체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한 업체는 “일반 회사도 아니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원전 부품을 최저가 낙찰에 부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한수원의 입찰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수원 노조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이번 사건으로 국민에게 심려와 우려를 끼쳐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미검증 부품으로 인한 발전 정지를 빨리 정상화하고 안전 운영과 겨울철 전력수급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수원 노조는 “원전 안전을 저해하는 제반 요인을 찾아내고 일소하는 내부 감시자의 역할을 충실히 실천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원전#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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