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부파이낸스 前회장, 101일 실종 자작극 왜?

  • Array
  • 입력 2012년 10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올 7월 19일 부산 연제경찰서로 실종신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양재혁 전 삼부파이낸스 회장(58·사진)이 부도가 나기 전 2200억 원의 돈을 맡겨둔 하모 씨(삼부파이낸스 전 재무이사·63)를 만나러 나간 뒤 일주일째 소식이 없다’는 양 전 회장 동생의 전화였다.

양 전 회장은 1999년 파이낸스 사태로 부도가 나기 전까지 국내 최대 규모였던 삼부파이낸스와 삼부건설 등 계열사 5개를 거느렸던 거물이었다. 자산 규모만 1조5000억 원에 달했고 연예계와 체육계에서도 거물로 통했다. 그는 고객 돈 110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1999년 구속돼 징역 5년을 선고받고 2004년 출소했다. 양 전 회장은 구속될 때 삼부파이낸스의 남은 자산 2200억 원을 세무공무원 출신인 최측근 하 씨에게 맡기고 청산법인 C사를 설립하도록 했다. 하 씨는 양 전 회장이 출소하자 잠적했다.

재기를 꿈꾸던 양 전 회장은 2200억 원을 찾기 위해 9년째 하 씨를 뒤쫓았다. 서울에서 월세 30만 원짜리 고시텔을 근거지로 움직였다. 한 지인은 “양 전 회장이 합기도 도장에서 실전용 격투기를 배웠는데 손에 피가 나도록 샌드백을 두드렸다”고 말했다.

양 전 회장은 7월 13일 강원 속초시에 가면 하 씨를 만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그후 소식이 끊겼다. 경찰 추적 결과 당일 속초항 방파제 부근에서 휴대전화 배터리가 분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속초로 가기 전 그는 가족에게 “하 씨를 만나면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다. 내가 사라지면 신고하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경찰은 납치 등 범죄 가능성에 대해 수사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수사 도중 수상한 점이 발견됐다. 7월 23일 대구 대형마트에서 양 전 회장이 혼자 여유롭게 쇼핑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잡힌 것. 아들 집 근처였다. 경찰은 이때부터 실종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고의 잠적’으로 결론 내렸다. 실제로 양 전 회장은 같은 달 22일 경북 포항시 장어집에서 아들 신용카드로 음식값을 냈다. 9월엔 서울에서 택시운전사 휴대전화를 빌려 친구에게 전화했다. 이달 초엔 부산역에서 공중전화로 지인에게 전화했다. 그는 잠적 101일 만인 22일 부산 대연동 커피숍에 지인을 만나러 왔다가 종업원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양 전 회장은 경찰에서 “실종된 것처럼 보이면 경찰이 잠적한 하 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찾아낼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 씨는 해외 도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양 전 회장이 통장에 남아 있던 500만 원으로 전국을 돌며 100일 간 지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연제경찰서는 23일 양 전 회장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할 방침이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삼부파이낸스#자작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