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물 신약은 한약 표절” 한의사들 정책폐기 요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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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청 앞에서 궐기대회… 의협 “한약 아닌 가공약품”
복지부도 해법 없어 골머리

18일 오전 충북 청원군 오송읍 식품의약품안전청 청사 앞에서 한의사 1200여 명이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었다. 한의사들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천연물 신약 정책을 전면 폐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한의사 비상대책위원회 안재규 위원장은 “한의계에서 이미 쓰고 있는 한약을 제약사가 그대로 가져다 독성시험과 초기임상시험을 생략한 채 천연물 신약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건강보험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 천연물 신약은 대국민 사기극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날은 식약청 국정감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안 위원장은 “우리의 주장을 국회에도 알리기 위해 국정감사가 열리는 날을 골라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한의사들의 대규모 시위는 2007년 1월 한의사 시장 개방에 반대한 궐기대회 이후 처음이다. 천연물 신약 정책이 폐기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어 갈등은 더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위 현장에 있던 한의사들은 대부분의 천연물 신약이 독성 자료나 임상시험 보고서의 제출이 면제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의사들은 “천연물 신약은 한방 원리에 토대를 뒀다”며 “따라서 한의학적인 접근이 필요한데도 현 정책은 이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식약청은 “화학적으로 합성되는 의약품의 경우도 모든 독성 자료를 제출하는 것은 아니다. 안전성과 유효성에 관한 검토는 이뤄지고 있다”며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양·한방의 해묵은 갈등이 천연물 신약을 빌미로 또다시 터졌다고 본다. 한의사들이 겉으로는 천연물 신약의 절차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실제로는 처방권을 얻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다.

천연물 신약은 합성 신약보다 개발비가 적게 들고 임상 정보가 풍부한 전통의학을 활용할 수 있어 최근 개발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에 허가된 천연물 신약은 SK케미칼의 ‘조인스정’과 동아제약의 ‘스티렌정’ 등 7품목이다.

문제는 이 약을 의사만 처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한방 원리를 이용했는데 정작 자신은 처방할 수 없다는 게 한의사들의 불만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약재를 가지고 만든 천연물 신약을 한의사가 처방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의사의 처방권을 박탈해야 한다”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천연물 신약은 일반 한약이 아니라 가공된 의약품이다. 한의사가 처방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맞서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6월부터 의협, 한의협과 함께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 자문을 하는 수준에 그쳤다. 논의 결과가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천연물 신약은 2000년 제정된 ‘천연물 신약 연구개발 촉진법’에 따라 추진된 정부 사업이다. 천연물을 이용한 신약의 연구개발 및 산업화를 촉진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천연물 신약을 장려해 한의약 산업을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한의사#식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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