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증거 없는데…’ 낙지살인사건 유죄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1일 14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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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직접증거 없어도 간접증거로 유죄판결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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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일어난 이른바 '낙지 살인사건'의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11일 인천지법 형사12부(박이규 부장판사)는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낙지를 먹다 질식사한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낸 혐의(살인)로 기소된 남자친구 A씨(31)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직접적인 증거인 시신이 없고 구체적인 범행도구가 발견되지 않았으나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렸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재판부와 검찰 수사 내용 등에 따르면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2010년 4월 19일 오전 3시께 남자친구 A씨는 여자친구 B씨(당시 21세)와 함께 인천시내 한 모텔에 투숙했다. A씨는 투숙 전에 낙지 4마리를 구입, 2마리는 자르고 2마리는 통째로 가져갔다.

투숙 1시간 여가 지난 뒤 A씨는 모텔 종업원에게 "여자친구가 낙지를 먹다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말하며 119 신고를 요청했다. A씨는 B씨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갔으나 B씨는 병원으로 옮긴 지 16일 만에 숨졌다.

유족들은 이 사건을 단순 사고사로 여기고 B씨의 시신을 화장했다.

그러나 뒤늦게 B씨가 사망하기 한 달 전쯤 생명보험에 가입했고, 보험금 수령인이 법정상속인에서 남자친구인 A씨로 변경된 사실이 드러났다. A씨는 보험금 2억 원을 받은 뒤 유족과 연락을 끊었다.

이를 수상히 여긴 유족의 요구에 따라 경찰은 사건 발생 5개월 만에 재수사에 나섰다. 이후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보강 수사를 벌여 A씨를 구속했다.

사건 발생 2년여 만에 열린 이번 재판의 쟁점은 시신이 화장돼 직접 증거가 사라진 상황에서 간접 증거만으로 유죄를 판단할 수 있느냐다.

재판부는 살인죄와 같은 중죄의 경우, 직접 증거 없이 간접 증거만으로도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공소사실에 나온 정황 증거를 적극 인용했다.

재판부는 B씨가 모텔에서 심폐기능이 멈춘 채 발견된 것은 호흡곤란과 질식에 의한 것인데, 이 경우 당연히 나타나야 할 몸부림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피해자에게 몸부림 흔적이 발견되지 않을 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추정이다. 누군가 B씨의 코와 입을 막는 등 호흡을 곤란하게 하는 '유행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코와 입을 막은 흔적이 남지 않은 것은 현장에서 발견된 타월 등 부드러운 천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판시했다.

이밖에도 모텔 종업원 진술, 사망 전까지 B씨를 진료한 의사 진술, A씨가 사건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은 지인들의 진술을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특히 신용불량자인 A씨가 주변에 돈을 빌리는 등 금전적으로 궁핍한 형편에 있는데도 과다 소비를 한 점을 의심했다. 재판부는 보험금을 노리고 여자친구를 살해할 충분한 동기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B씨가 고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 점, A씨가 모텔 종업원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종업원을 통해 사건을 신고한 점도 수상했다. 또 A씨는 여자친구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에 또 다른 만남을 계속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 점도 유력한 정황 증거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같이 제시된 간접 증거들을 추론과 관찰을 통해 종합적으로 살필 때 유죄 판결에는 무리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남자친구인 A씨가 항소할 경우 항소심 재판 결과가 뒤집힐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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