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태극기 할아버지 ‘펄럭’

  • Array
  • 입력 2012년 9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10년째 국경일 전날 거리에 태극기 내걸고 소외계층 돕고…
이인수 씨 순천 시민賞

이인수 씨는 2003년부터 전남 순천시 왕조2동에 국경일마다 태극기 달기 운동을 하고 있다. 순천시 제공
이인수 씨는 2003년부터 전남 순천시 왕조2동에 국경일마다 태극기 달기 운동을 하고 있다. 순천시 제공
전남 순천시 왕조2동은 국경일이 되면 말끔한 태극기가 4차선 도로변에 휘날린다. 동네 상가 곳곳에도 펄럭이는 태극기가 눈에 띈다. 김모 군(12)은 “국경일 전날이 되면 태극기 할아버지가 동네를 돌며 태극기를 달아 국경일이 돌아온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이인수 씨(73)가 바로 왕조2동의 태극기 할아버지다. 이 씨는 2003년부터 국경일이 되면 동네 곳곳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그동안 낡은 태극기 100개를 교체했고 통장을 하면서 받은 포상금으로 태극기 400개를 구입해 각 가정에 나눠주기도 했다.

이 씨는 1969년부터 1971년까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입대 당시 나이가 30세였다. 초등학생 딸을 둔 학부모였지만 4남 1녀의 장남으로 동생들을 돌보다 늦깎이 입대를 했다. 이 씨는 백마부대인 9사단 1연대 1대대 소총수로 10여 차례 전투에 참여했다.

당시 대대장은 나이가 많아 사회에서 장례를 치러본 경험이 있는 이 씨에게 전사자의 장례(화장) 절차를 맡기기도 했다. 이 씨는 작전지역에서 헬기로 실려 오는 전우의 시신에 묻은 피를 닦고 새 옷을 입혔다. 마지막으로 시신을 감싼 것이 태극기였다. 이 씨는 “전우의 시신을 태극기로 감쌀 때 온몸에 강한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고 피눈물이 났다”며 “그때부터 태극기에 강한 애착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씨는 제대 이후 자녀 4남매를 키우기 위해 공사판, 농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는 자녀들을 다 키우고 난 뒤 9년 전부터 쌈짓돈을 모아 태극기 달기 운동을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태극기에 너무 무심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와 함께 이 씨는 해마다 추석이나 설이 되면 경로당 14곳에 20kg들이 쌀 한 포대씩을 전달하고 있다. 또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보태고 있다. 배고픔의 서러움을 알기 때문이다.

이 씨는 그동안 태극기 달기 운동과 소외계층을 도운 노력을 인정받아 순천 시민의 상 사회복지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씨는 “국경일 전날 도로변에 태극기를 달 때 학생들이 ‘내일 우리 집에도 태극기를 달아야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뿌듯하다”며 “힘이 남아 있는 한 태극기 달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순천#태극기#할아버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