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끓는 父情 “구속 당해서라도 내 딸 죽게한 범인 만나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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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행당한 알바 여대생 자살’ 파문 확산

13일 오전 10시 반경 충남 서산시 L피자가게(2층).

한창 영업 준비 중인 매장에 중년 부부가 뛰어들어 왔다. 부부는 “우리 딸은 죽었는데 너희들은 장사를 하려고 하느냐”며 접시를 계단으로 내던지는 등 분통을 터뜨렸다. 가게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들 부부는 이 피자가게 사장 안모 씨(37)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협박에 시달리다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르바이트 여대생 이모 씨(23)의 부모.

이 씨의 아버지(52)와 어머니 김모 씨(49)가 단순히 분풀이를 하기 위해 이 가게를 찾은 건 아니었다. 하루 전 딸의 장례식을 치른 뒤 경찰에게 “이놈 얼굴이나 보아야겠다”며 안 씨를 만나게 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구속 상태라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범인을 꼭 만나 왜 그랬는지 호통이라도 치고 싶었다. 결국 이 부부는 “피자가게 기물을 부숴 현행범으로 유치장에 들어가서라도 만나야겠다”며 피자가게를 뒤엎었다.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관이 도착하자 이 씨 부부는 “우리를 구속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현장에 같이 갔다는 피해 여성의 고모 이경구 씨(47)는 “구속돼서라도 범인의 얼굴을 보려고 했던 오빠 부부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쇠를 녹일 듯한 아버지의 분노는 이제 회한과 탄식으로 바뀌고 있다. 21일 오전 위로하기 위해 아버지 이 씨에게 전화를 걸었던 한 지인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씨가 ‘어제 술을 많이 마셔 만나기 힘들다’고 했다”고 전했다. 생업인 중장비 일도 일단 접었다고 한다. 서산시 시골집에서 두문불출하는 그는 “(딸에게) 용돈을 충분히 줬으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지인들이 전했다.

어머니 김 씨는 딸의 죽음 이후 실신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장례식 날에는 “유골 뿌리는 장소에 가봐야겠다”며 따라나섰다가 다시 실신하는 바람에 딸이 마지막 가는 길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딸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서명운동을 하고 관련 기관도 방문하는 등 적극적이다. 20일에는 엄정수사 등을 촉구하는 지역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데 이어 서산시의회를 찾아가 의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부모는 한편으로 7세짜리 늦둥이 아들 걱정도 태산이다. 7년 전 큰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태어나 이제 ‘하나뿐인 자식’이 된 아이다. 아이는 매일 같이 자거나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찾아갈 정도로 따랐던 누나가 열흘 넘게 보이지 않는데도 “누나 어디 있느냐”고 묻지 않는다. 고모 이 씨는 “아이가 누나에게 뭔가 큰일이 닥쳤다는 걸 눈치 챈 듯하지만 충격을 감당할 수 없어서인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며 “아이가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힘겹게 시간을 보내는 이들 가족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건 인터넷 악플이다. 이 씨의 죽음에 대해 일부 누리꾼은 ‘자기들끼리 좋아하다 그런 일을 갖고…’라는 식의 허위 댓글을 무책임하게 써대고 있다. 한편에선 가해자 안 씨 가족들의 사진과 주소가 온라인에 공개되는 등 지나친 ‘신상 털기’도 진행되고 있다. L피자 체인도 공격받고 있다.

숨진 이 씨의 친구들은 인터넷을 통해 억울한 죽음을 전하고 있다. 서산시 호수공원과 버스터미널 등지에서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서명운동을 주도하는 초등학교 동창 홍순재 씨(23)는 “억울하게 죽은 친구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벌백계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찰은 안 씨가 가슴 사진 외에도 성폭행 장면을 찍은 뒤 이 씨가 자살하자 삭제한 것으로 보고 휴대전화 복원에 집중하고 있다. 안 씨는 이 씨가 숨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인을 시켜 경찰에 전화를 걸어 보게 한 사실이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경찰은 안 씨가 ‘미안하다’ 등의 내용이 적힌 메모지를 갖고 있던 사실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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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서산#성폭행#여대생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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