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들 울린 ‘단속 면제 회원증’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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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원짜리 회원증 제작… “외국인 등록증과 효력 같다”
25만∼300만원에 팔아, 조선족 포함 307명 피해, 사기전과범 등 10명 검거

“300만 원이나 주고 샀는데….”

중국동포 윤모 씨(46·여)는 최근 모 농업과학기술교육센터 회원증을 무려 300만 원이나 주고 샀다. 불법체류자인 윤 씨는 농업과 아무 관계가 없었지만 “센터 회원증이 외국인등록증과 같은 효력이 있어 단속에 걸리지 않는다”는 지인의 말을 믿고 거금을 냈다.

하지만 이 센터는 지난해 5월 사기 전과 3범인 이모 씨(59)가 종교재단법인 설립 허가를 신청해 승인받은 뒤 산하에 농업과학기술교육센터를 운영하는 것처럼 허위로 꾸민 실체가 없는 곳이었다. 이 씨는 사립고 기간제 교사인 동거녀 박모 씨(53)와 함께 센터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꾸민 뒤 ‘회원증’을 만들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불법체류자들이 강제추방 불안감에 시달린다는 점을 노려 “센터 회원증이 외국인등록증과 같은 효력이 있어 단속에 걸리지 않는다”고 속인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한국 정보에 어두운 데다 비자기간 만료로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조선족 등 중국동포들에게는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다.

뜻밖에 ‘회원증’을 찾는 중국동포가 많자 이 씨와 박 씨는 올 4월 국내에서 중국동포의 결혼과 이직, 비자연장 등을 알선하는 김모 씨(45·여)를 모집총책으로 고용까지 했다. 회원증 1장에 25만 원 이상을 받아오면 그중 50∼60%를 수수료로 주기로 했다.

또 자신이 운영하는 재단과 센터에 정부 관료와 여야 정치인들이 관여하고 있어 회원증을 보이면 단속을 피할 수 있다는 소문을 냈다. 김 씨가 고용한 모집책 3명을 통해 중국동포 사회에 “불법체류자 10여 명이 5월 단속에 걸렸으나 회원증을 보여주자 훈방됐다”는 소문도 퍼뜨렸다.

‘회원증’은 올해 불법체류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 씨 등은 앞면에 증명사진과 함께 이름, 생년월일이 명시된 회원증을 인쇄업체에서 장당 4000원에 제작해 25만∼50만 원에 팔았다.

이들의 범죄 행각은 50만 원에 회원증을 발급받은 하얼빈 출신 왕모 씨(32)가 지난달 해양경찰청의 단속과정에서 회원증을 제시하며 발각됐다. 14일 강제 출국된 왕 씨는 “막노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큰돈이었지만 단속을 무마할 수 있다는 말에 사게 됐다”고 말했다.

해경은 6월부터 최근까지 불법체류자 307명에게 회원증을 판매해 1억700만 원을 챙긴 혐의(사기 등)로 21일 이 씨와 박 씨 등 2명을 구속했다. 김 씨 등 모집책 8명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불법체류자#회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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