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개인의 책임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이 일을 계기로 병원마다 폭행과 성희롱을 막을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해 5∼7월 전공의 631명을 대상으로 수련병원 내에 폭언이나 폭행 방지를 위한 규정이나 대책이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396명(62.8%)이 “없다”고 응답했다.
대한병원협회 산하 병원신임평가센터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전공의 수련에 관한 업무의 일부를 위임받은 기관이다. 이 기관 관계자는 “일부 병원은 폭행 규정을 두거나 인사 또는 징계위원회를 통해 폭행사건을 처리한다. 그러나 아예 규정이 없는 병원도 많다”고 말했다.
폭행 관련 규정이 있다 해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가령 B병원의 경우 사건이 접수되면 전공의 수련을 총괄하는 교수(수련교육연구부장)가 우선 중재나 면담을 하도록 돼 있다. 징계위원회에 안건이 상정되는 경우는 폭행이 반복적으로 발생했거나 피해자가 결근할 정도로 심각한 상해를 일으켰을 때뿐이다.
문제는 전공의 평가 권한을 가진 교수와의 면담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피해자는 참을 수밖에 없다. 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폭행을 신고해 설령 교수가 사직한다 해도 주변 교수들에게는 ‘스승을 쫓아낸 제자’로 낙인이 찍힌다. 의사생활을 관둘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폭행을 참을 수밖에 없다. 신고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병원이 쉬쉬하는 폭행 사건은 훨씬 많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제 병원신임평가센터에 접수되는 사건은 연평균 2건에 불과하다.
병원 또한 사건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센터에 사건이 접수되면 결과에 따라 전공의 배정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병원으로서는 저임금의 전공의가 줄어드는 동시에 대외적인 이미지 추락도 감수해야만 한다.
설령 폭행 가해자인 ‘지도 전문의’가 처벌을 받는다 해도 자격 자체를 박탈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병원신임평가센터는 2014년부터 지도전문의의 자격요건을 강화할 예정이다. 8시간의 교육을 이수한 사람들에게만 자격증을 발급할 계획이다. 교육은 △윤리 △책임과 역할 △교육방법 △수련교과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미 지도전문의로 활동하는 교수들도 3년 이내에 교육을 이수하도록 할 방침이다. 센터 관계자는 “자격 박탈에 관해서는 아직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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