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몸상태 안좋다”던 임산부 조사 강행…유산할 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일 10시 42분


코멘트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러 온 임신 13주째인 여성이 경찰의 허술한 민원처리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조사를 받다 실신, 유산할 뻔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임신 13주째인 양모(28·여) 씨는 지난 달 31일 오후 3시50분경 자신에게 걸려온 협박전화를 신고하기 위해 수원서부경찰서를 방문했다.

양 씨는 고소인 조사를 받기 위해 청사 로비에서 기다리는 동안 식은 땀이 나는 등 몸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40여 분 뒤 경제수사팀 A경찰관을 만나 고소장의 내용을 설명하려던 양 씨는 "몸이 아파서 더이상 설명을 못하겠다"며 "다음에 방문하겠다"고 했다.

양 씨의 안색이 창백해지자 옆에 있던 경찰관도 다음에 조사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A경찰관은 "내일부터 휴가를 가야하니 오늘 처리해야 한다"며 양 씨를 상대로 끝까지 고소내용을 조사했다. 고소 내용을 다 듣고 난 뒤 이 경찰은 "우리 부서 소관이 아니다"며 사이버 수사팀으로 고소건을 인계했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어진 양 씨는 "다음에 오겠다"며 사무실을 나와 계단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5분여 뒤 또다시 사이버수사팀 B경찰관이 전화를 걸어 "멀리 가지 않았으면 다시 와서 진술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양 씨가 "몸이 좋지 않은데 꼭 해야 하느냐"고 하자 "내가 맡은 사건이 몇 건인 줄 아느냐"며 양 씨를 다그쳐 다시 고소인 조사를 진행했다.

1시간 30분 동안 대기와 조사를 반복하면서 진이 빠진 양 씨는 조사를 마치고 나오다 현관 앞 계단에서 결국 쓰러졌다. 다행히 이를 목격한 중년 여성이 119에 신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양 씨는 하혈을 하는 등 유산 위험이 높다는 의사 소견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은 뒤 1일 오후 퇴원, 현재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양 씨는 "임산부인데 몸상태가 좋지 않다고 밝혔는데도 휴가 등을 이유로 조사를 강요했다"며 "뒤늦게 사과하긴 했지만, 조금만 늦게 병원에 도착했다면 유산할 뻔 해 무서웠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양 씨가 방문했을 때 사건이 많아 오래 기다리게 한 점과 조사가 원활하지 못했던 점을 인정한다"며 "양 씨에게 사과는 물론 다음번에는 이런 불편이 없도록 단단히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