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한국서 행복하다는 어머니 말 철석같이 믿고 기뻐했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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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뒤 한국에서 만나자며 웃음 짓던 어머니는 차디찬 주검으로 아들을 맞았다. 어머니가 살던 한국 집을 찾은 아들은 남편의 폭력 속에서 식당일로 힘들게 번 돈 일부를 중국으로 보내온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삶의 흔적을 목격하고 눈물을 훔쳤다. 》

6일 오후 장맛비 속에서 서울 강동구 성내동의 살인사건 현장을 찾은 중국동포 김모 씨(34) 얘기다. 김 씨는 2일 반지하방에서 새 남편 홍모 씨(67)의 칼에 찔려 숨진 결혼이주여성 이모 씨(57·중국동포)의 아들이다. 숨진 이 씨는 2005년 한국인인 홍 씨와 결혼하기 위해 한국에 왔으나 홍 씨의 반대로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채 남편의 폭력을 감내하다 결국 살해됐다.

▶본보 5일자 A12면
경찰이 방범창 뜯는새 조선족 아내 비명이…


비보를 듣고 5일 한국에 온 아들 김 씨는 혼이 반쯤 빠져나간 듯한 표정이었다. 이 씨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그는 “한 달 전 1년 반 만에 집(중국 지린 성)에 다니러 온 어머니에게 한국 생활을 물었더니 ‘행복하다’고만 했다. 그 말을 바보처럼 믿었다”며 말을 흐렸다.

김 씨는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의 탓인 양 괴로워했다. 어머니는 중국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아들을 위해 한국에서 번 돈 일부를 생활비로 보냈으며 아들을 데려오고 싶어 했다. 하지만 홍 씨는 주변에 ‘아내가 불법체류자다, 밀입국했다’고 거짓말을 해 이 씨를 고립시키면서 폭력을 휘둘러왔다.

김 씨는 사건 당일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불안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건너편에서 ‘다 죽이겠다’는 그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며 “그게 어머니의 마지막 목소리가 될지 몰랐다”고 했다.

유품을 정리하는 김 씨의 눈에 평소 남편에게 맞고 지낸 어머니의 흔적이 들어왔다. 어머니의 남루한 옷가지들은 찢어져 있고, 외출 때 쓰는 가방도 칼로 잘려 있었다. 어머니와 이모 2명이 찍은 사진 위에는 칼자국이 선명했다. 모자가 찍은 사진에는 자신의 모습이 잘려 나가고 없었다.

김 씨는 어머니가 일했던 식당도 찾았다. 식당 주인은 김 씨의 두 손을 꼭 잡고 “엄마랑 많이 닮았다”며 “신장이 안 좋아 소변에 피가 나도 엄마는 네 생각을 하며 일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살아라”라고 당부했다. 어머니가 고생했던 얘기를 들은 아들은 “고맙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딱한 사연을 접한 검찰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경찰,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이 씨의 법적 절차와 장례식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채널A 영상] 가정폭력 3분의 2, 말 못하고 ‘쉬쉬’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성모 인턴기자 중앙대 경제학과 4학년  
#성내동 살인사건#결혼이주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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