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사부인 살해, 대법 “증거 불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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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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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살해 단정 근거 부족 재심리하라” 파기환송
‘치과의사 모녀살해’처럼 긴 공방끝에 무죄 나올수도

임신 중인 아내 박모 씨(당시 29세)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1, 2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의사(소아청소년과 수련의) 백모 씨(32)에 대해 대법원이 “유·무죄를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7년 8개월간 ‘사형→무죄→파기환송→무죄→무죄확정’의 긴 재판을 거쳤던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의 공식이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28일 이른바 ‘만삭 의사부인 살해사건’ 상고심에서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충분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 판결에는 백 씨가 아내 박 씨를 살해했다고 단정할 만한 객관적 증거와 치밀한 논증이 없으므로 다시 심리하라”고 밝혔다. 사건 자체를 원점으로 되돌린 셈이다.

재판부는 먼저 “박 씨의 사망원인이 질식사가 아닌 액사(목이 졸려 숨진 것)라는 점이 확정돼야 한다”며 “박 씨의 시신 위치로 볼 때 가슴 압박으로 질식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액사에서만 특유하게 발생되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씨의 시신은 욕조에 다리를 걸친 채 머리가 욕조 안으로 들어가 목과 가슴 부위가 압박을 받는 상태로 발견됐다.

또 재판부는 “백 씨의 이마와 팔 등에서 발견된 상처를 박 씨가 입힌 방어흔(공격을 받을 때 방어하기 위해 가해자에게 입히는 상처)이라고 판단했는데 박 씨 손톱에서 혈흔이 검출되지 않았다”며 “사망 추정 시간 등을 따져볼 때 백 씨가 집을 나선 오전 6시 41분 이후에 박 씨가 사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은 사건 발생 초기부터 ‘한국판 O J 심프슨 사건’이라고 불렸던 1995년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과 종종 비교돼 왔다. 의사가 아내를 죽인 혐의를 받은 데다 정황 증거만 있을 뿐 직접적인 살해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긴 법정공방 끝에 결국 남편은 무죄가 확정됐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살해#단정#임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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