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도와줘요” 긴급전화에… 경찰, 한가하게 1000가구 아파트 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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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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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가정폭력 방지법 시행 두달…
지난달 25일 천안 가정폭력 사건 처리 보니…

경찰이 가족 동의 없이도 가정폭력에 개입할 수 있는 개정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법이 지난달 2일 발효됐지만 관련기관들의 부적절한 대처로 구조 요청자들이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충남에서는 처음으로 경찰이 개입한 지난달 25일의 가정폭력 신고사건이 그랬다.

이날 천안시 여성의 긴급전화(1366) 충남센터에 휴대전화가 걸려온 것은 오전 7시 11분이었다. 한 여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구성동 S아파트”라고 한 뒤 말을 잇지 못했다. 수화기 너머에선 “야”라는 남성의 험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센터 측은 통화가 더이상 안 되자 오전 7시 28분 천안동남경찰서에 신고했다.

S아파트 거주 사실과 휴대전화 번호 등 구조 요청자에 대한 두 가지 정보만 가진 경찰이 취할 가장 우선적인 조치는 경찰도 인정하듯이 휴대전화 신원조회였다. 신원을 확실하게 파악할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전체 가구별 수색은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구조 요청자가 억류된 경우 성공을 보장하기 어렵다. 더구나 S아파트는 1000가구가 넘는 데다 이른 아침이었다. 충남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신원조회를 통해 해당 동 호수에 범죄 혐의점을 명확히 둘 수 있어야 의심 가는 가구가 조사를 거부하더라도 강제적인 조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처음부터 전체 가구별 수색에 매달렸다가 여의치 않자 오전 8시 38분에야 이동통신사에 신원 확인을 요청했다. 신고를 접수한 지 1시간 10분 만이었다. 폭력적인 상황에서 경우에 따라 불미스러운 일이 여러 번 발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경찰은 신원 확인조차 ‘긴급’으로 하지 않았다. 신원 확인을 요청받은 S통신사 관계자는 “통화기록 조회와 달리 휴대전화 신원 조회는 10분도 안 돼 회신해줄 수 있다”며 “경찰청을 통해 긴급 확인 요청을 하면 되는데 동남경찰서는 평일 오전 9시 전에는 근무하지 않는 통신사 지방본부(대전)에 확인 요청서를 보냈다”고 말했다.

경찰은 주민 휴대전화에 1366센터에 걸려온 전화번호를 입력해 보는 방법으로 이 전화번호가 한 여성 주민의 아들 친구 것임을 확인한 뒤 이날 오전 9시경 구조를 요청한 A 씨(40) 집을 방문해 남편 B 씨(38)를 상습폭행 혐의로 입건했다. 다행히 구조 요청자를 찾았지만 상당부분 우연에 의존한 방법이었다. A 씨는 아들 전화기로 신고했다가 남편에게 빼앗긴 것으로 밝혀졌다.

S통신사도 비난을 면하기는 어렵게 됐다. 긴급 요청이 아니라지만 수사에 필요한 신원확인 회신을 의뢰받은 지 2시간이 지난 오전 10시 44분에야 했기 때문이다. 동남경찰서 관계자는 “휴대전화 신원확인 요청은 처음에 가구별 수색과 동시에 취했어야 했으며 긴급 요청을 하지 않은 점은 실수”라며 “하지만 경찰이 나름의 활발한 현장 조치로 구조 요청자를 찾아낸 점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충남#천안#긴급전화#가정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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