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구경않고 길만 건넜는데 돈 받았으면 절 관람료 62.5배 위자료 지급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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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법, 천은사-전남도에 ‘1600원+10만원 배상’ 판결

산에 가려는 사람들에게 사찰 땅이 포함된 도로를 통과한다며 강제로 문화재관람료(입장료)를 받았다면 관람료를 반환하고 정신적 피해까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비슷한 마찰이 전국적으로 끊이지 않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등산객들의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민사합의1부(재판장 박범석 부장판사)는 1일 강모 씨(37) 등 지리산 성삼재 통과 차량 운전자 74명이 지리산 천은사와 전남도를 상대로 제기한 통행방해금지 등 청구소송에서 “천은사와 전남도는 공동 불법행위자로서 강 씨 등에게 문화재관람료 1600원씩과 위자료 10만 원씩을 각각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천은사는 천은사 경내를 관람하지 않고 단순히 지방도 861호선을 통행하는 강 씨 등에게 문화재관람료 1600원을 징수하고 이를 내지 않으면 통행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통행의 자유를 침해한 불법행위”라고 판시했다. 또 “이 같은 사정을 알면서도 방치한 전남도는 과실에 의한 공동 불법행위의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 국립공원내 22개 사찰 유사소송 잇따를 듯 ▼

그동안 사찰에서 강제로 받은 문화재관람료를 되돌려주라는 판결은 몇 번 있었지만 관람료의 62.5배를 위자료로 지급하라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천은사 문화재관람료 매표소를 철거해 달라’는 청구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피해라며 기각했다.

○ 유사 소송 잇따를 가능성

강 씨 등은 2010년 12월 지리산국립공원의 지방도 861호선을 이용해 지리산 성삼재로 가는 과정에서 천은사의 요구에 따라 문화재관람료 1600원씩을 낸 뒤 천은사와 전남도를 상대로 매표소 철거, 5700여만 원의 손해배상과 입장료 반환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방도 861호선은 전남 구례군 구례읍∼지리산 성삼재를 잇는 10km 구간이다. 이용객 대부분은 지리산 등산객이다.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는 2010년 지리산 통행료 철폐 범시민 소송단을 결성해 소송을 제기했다. 2년여간 무료소송을 담당한 서희원 변호사(54)는 “절에 가는 사람들에게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리산에 가려고 차를 몰고 가는 운전자에게도 관람료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천은사 문화재관람료 강제징수 마찰로 지난해 전남 구례경찰서 112차량이 출동한 것은 49건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이번 판결은 전국 국립공원 내에 있는 사찰에서 유사 소송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지난해 4월 개정된 자연공원법에 따라 사찰 측은 공원문화유산지구를 지정해 또 다른 방식으로 입장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 판결의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문화재 보수와 사유재산 인정 주장도

대한불교조계종 사찰 가운데 현재 문화재관람료를 받고 있는 곳은 67개 사찰이다. 불교의 다른 종단도 관람료를 받는 사찰이 있지만 한두 곳에 불과하다. 조계종의 경우 신흥사 월정사 구룡사 동학사 해인사 쌍계사 백양사 천은사 도갑사 등 22곳이 국립공원 내에 있어 관람료를 둘러싸고 매표소 직원과 등산객 사이에 마찰을 빚고 있다.

조계종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문화재관람료 수입은 340여억 원이며 이 중 공원 내 사찰 수입은 110여억 원으로 추산된다. 백담사 백련사 안국사 등 세 곳은 해당 사찰이 종단에 요청해 관람료를 징수하지 않고 있다. 관람료 징수는 해당 사찰이 요금을 자율적으로 정한 뒤 종단에 요청해 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

조계종은 이번 판결과 관련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천은사는 사찰 관람에 관계없이 사찰 땅을 경유하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지만 다른 사찰들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주장이다. 조계종은 “천은사와 종단의 해당 부서가 이번 판결을 논의할 계획”이라며 “천은사 사례를 다른 사찰에까지 확대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문화재관람료를 둘러싼 논란이 사찰이 등산객의 자유로운 산행을 가로막고 있다는 시각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는 게 조계종의 입장이다.

또 문화재 관리의 필요성과 사유지인 사찰 환경의 파괴 및 보수, 정부의 부족한 지원, 관련 법령의 정비 등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문화재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보수와 유지, 관리비용이 필요하다”며 “현재 문화재청은 보수 명목으로 필요한 전체 비용의 36%만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남도 측 변호사는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순천=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천은사#관람료#법원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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