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참전용사의 후손인 태국인 라타파콘 파콘 씨(왼쪽)와 에티오피아인 아벨 알라무 씨가 14일 한국전쟁기념재단의 후원을 받아 재학 중인 한국외국어대 캠퍼스를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태국 출신의 라타파콘 파콘 씨(25)는 한국외국어대에서 1년째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모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도 한국어를 전공했다. 졸업한 후 주태국 한국대사관으로부터 해외 참전용사 후손에게 장학금을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한국에 오게 됐다.
7세 때부터 할아버지에게서 한국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볼링핀만 한 포탄이 등으로 날아왔어. 터지지 않아 다행이었지.” “겨울에는 얼마나 추웠는지 모른단다. 음식도 입에 안 맞아 고생했지.”
할아버지는 1951년 7월부터 1년간 6·25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다. 전쟁의 참상을 손자에게 얘기할 때마다 할아버지는 슬퍼 보였고, 시선은 사진을 향해 있었다. 한국 여인이었다.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은 할아버지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는 반지가 반짝였다.
할아버지는 그저 “전쟁 당시 한국인 여자친구가 있었다”고 했다. 한국을 떠나야 했던 할아버지는 4년 뒤 태국 여성과 결혼했다. 하지만 1996년 타계 전까지 사진을 벽에 붙여놓았다.
라타파콘 씨는 지난해 한국에 오면서 할아버지와 여인의 사진도 가져왔다. “할아버지는 한국 여인의 이름도 나이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아마 할머니와 아버지가 슬퍼할까 봐 걱정했을 거예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꼭 찾아보고 싶어요.”
6·25전쟁 60년을 기념해 2010년 설립된 ‘한국전쟁기념재단’은 라타파콘 씨 같은 참전용사의 후손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이 받았던 도움을 되돌려주기 위해서다. 그리스 에티오피아 터키 태국 필리핀 콜롬비아 등 6개국을 대상으로 한다. 올해는 현지 초중고교 학생 120명, 한국으로 유학 오는 대학(원)생 18명을 지원했다.
라타파콘 씨는 “할아버지가 고생했음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9월부터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과정 수업을 듣는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진 못했지만 대학원 공부를 마친 뒤에도 한국 여인과 결혼해 여기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학생인 아벨 알라무 씨(26)도 마찬가지 경우다. 1953년 6·25전쟁에 참전했던 할아버지는 알라무 씨가 1세 때 세상을 떠났다. 사진을 통해 본 할아버지는 군복을 입고 한국인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굶주린 아이들에게 할아버지가 배급받은 음식을 나눠주곤 했다는 이야기를 할아버지 친구에게서 들었다.
그는 라디오 PD로 일하다가 지난해 4월 한국에 왔다.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에서 국제개발학과 석사과정을 듣고 있다.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인터넷 문화. “스마트폰 메신저로 멀리 있는 사람에게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에서 온 그는 한국식 커피믹스 예찬론을 펼치기도 했다. “달콤하고 정말 맛있어요. 하루에 서너 잔은 마셔요.”
아벨 씨는 2년 뒤 귀국하면 한국에서 배운 내용을 에티오피아 발전에 활용할 계획이다. 그는 “재단의 지원프로그램에 정말 감사한다. 여기 있는 동안 참전용사와 관련된 영화나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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