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복지, 비급여의 덫]<上>진료비, 부르는 게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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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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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비 정보 ‘숨바꼭질’… 공개자료도 온통 영어 ‘알쏭달쏭’

영어로 써야 정확? 한 대학병원 홈페이지의 비급여 진료비 안내 화면. 거의 영어로 표기돼 있어 일반 환자와 가족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병원 홈페이지 캡처
영어로 써야 정확? 한 대학병원 홈페이지의 비급여 진료비 안내 화면. 거의 영어로 표기돼 있어 일반 환자와 가족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병원 홈페이지 캡처
동아일보 취재팀은 병·의원 웹사이트 100여 개를 무작위로 탐색했다. 비급여 진료비 정보를 찾는 작업은 숨바꼭질과 같았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을 굳이 친절하게 공개할 병원이 있겠느냐”는 한 병원 관계자의 말이 실감이 났다.

한 대형병원 웹사이트에서 어렵게 비급여 진료 항목 안내 화면을 찾았다. 이번에는 난수표를 보는 느낌이었다. 모두 영어로 돼 있었다. 우리말로도 낯선 의학용어를 영어로 표기하니 무슨 진료인지 알 수가 없다. 병원 측은 “진료 방법이나 부위를 정확하게 표시하려면 영문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한글로 표기한 다른 병원들은 부정확한 진료를 한다는 뜻일까.

병원에는 비급여 진료비 안내 책자를 비치했을까. 대형병원은 대부분 비치하고 있었다. 다만 책자는 환자나 가족들이 자주 가지 않는 곳에 놓여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환자나 가족들은 거의 없었다. ‘정보 공개 의무’를 마지못해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 ‘비급여 진료비 공개’ 법, 있으나마나


의료법에 따르면 2010년 1월 31일부터 모든 의료기관은 비급여 진료비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비급여 진료 항목과 진료비가 적힌 책자를 접수창구나 환자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비치해야 한다. 진료기록부 사본이나 진단서 등 각종 증명의 수수료 비용도 게시해야 한다.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병원들은 홈페이지에도 이와 같은 정보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시정명령을 받고, 그래도 공개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15일의 업무정지 처분을 받는다.

법이 시행되고 2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떨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공개의무를 어겨 시정명령이나 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병원은 거의 없었다. 복지부 담당과장은 “지난해 말 실태조사를 벌였는데 99.8%가 공개의무를 이행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재팀의 조사결과는 달랐다. 무작위로 조사했지만 16개의 병원이 웹사이트에 관련 정보를 게재하지 않고 있었다. 대형병원은 대부분 비급여 진료 정보를 공개하고 있었지만, 웬만한 ‘능력’이 없으면 찾기 어려운 곳에 꼭꼭 숨겨놓고 있었다.

○ 첨단의료일수록 진료비 격차 커


취재팀이 10개 대학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로는 첨단 진료일수록 진료비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전립샘 다빈치 로봇수술의 경우 가장 비싼 분당서울대병원(1200만 원)과 가장 싼 중앙대병원(700만 원)의 격차는 500만 원이었다. 갑상샘 다빈치 로봇수술도 600만∼1050만 원으로, 무려 450만 원의 격차가 벌어졌다.

캡슐을 삼키면 그 캡슐이 작은창자 안에서 내시경 역할을 하는, 이른바 ‘캡슐 내시경’은 2000년 이후 개발된 첨단 장비다. 이 장비를 이용한 진료비는 가장 비싼 한림대 성심병원(135만 원)이 가장 싼 고려대 안암병원(44만1000원)의 3배에 달했다. 캡슐내시경 진료비는 18개 항목 중 가장 편차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라식 수술도 병원 간 격차가 컸다. 서울성모병원(157만5000원)과 고려대 안암병원(71만 원)의 격차는 86만5000원이었다.

반면 비교적 ‘전통이 있는’ 진료비 격차는 적었다. 척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의 경우 최고가가 최저가보다 10.7% 비쌌다.

또한 빅5 병원들의 진료비가 대체로 나머지 대학병원들보다 비싼 것도 특징이다. 복부초음파를 제외한 17개 항목에서 빅5 병원의 평균 진료비가 높게 나왔다. 다만 서울아산병원은 빅5 병원에서 유일하게 가장 진료비가 비싼 항목도, 가장 싼 항목도 없었다.

○ 한 병원에서도 진료비 들쭉날쭉

같은 병원에서 동일한 진료를 받는 경우에도 진료비 격차가 크게 났다.

가령 서울아산병원의 전립샘암 다빈치 로봇수술은 700만∼1200만 원, 세브란스병원의 간 MRI는 47만∼137만 원이었다. 서울대 치과병원의 임플란트 시술비용은 300만∼450만 원으로 무려 150만 원의 격차가 있었다.

이에 대해 병원 측은 “기계 상태, 투입 인력, 환자 상태 등 여러 점을 고려하면 동일한 진료라도 진료비 격차가 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료를 받은 후에야 ‘적정 진료비’를 책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특정 교수의 선택진료를 받으면 인건비를 높이 쳐줘야 하기 때문에 더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결국 환자가 병원의 웹사이트를 통해 비급여 진료비를 미리 숙지했다 해도 나중에 얼마가 청구될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병원들이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도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 “환자 수-필요 인력-의료기기 따라 비용 달라” ▼
■ 병원 진료비 책정 어떻게

병원들은 비급여 진료비를 어떻게 책정하고 있을까.

취재팀의 이 질문에 나름대로 공식을 제시하는 병원도 있었지만 답변을 회피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 질문에 응한 병원의 경우 대체로 기계의 구입가격과 감가상각비, 인력 투입 규모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었다. 보험급여과 실무진이 개별 진료과 의사들과 협의해 진료비를 책정하는 곳이 많았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대학병원의 경우 장비, 관련 소모품, 인건비, 소요시간, 이익 등의 요소를 모두 고려해 비급여 진료비를 결정한다. 장비의 경우 구입가격과 감가상각비를 모두 고려한다. 인건비는 전공의가 진료를 하느냐 교수가 하느냐에 따라 추가요금을 달리 정한다. 기기를 이용할 때 소요되는 시간도 반영한다.

이를테면 서울아산병원은 시술에 사용되는 기계의 가격이나 감가상각비, 재료비 등을 고려해 비급여 진료비를 책정한다. 강북삼성병원의 경우 시술의 난이도와 소요시간도 비급여 진료비를 결정할 때 반영한다. 똑같은 시술이라도 여러 사람이 투입돼 오래 끈다면 비급여 진료비도 덩달아 오르는 셈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여기에 해당 장비를 이용하는 환자의 많고 적음을 반영한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가 많거나 자주 사용되는 기계를 이용하면 진료비가 좀 낮아지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진료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똑같은 질병이라도 많이 이용하는 기기를 써야 진료비를 덜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성모병원도 다른 병원들과 마찬가지로 기기 가격과 이용할 환자 수 등을 고려해 비급여 진료비를 책정한다. 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의 라식과 라섹수술의 가격차가 큰 것도 기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기계가 다른데, 가격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성모병원은 매년 물가상승률도 비급여 진료비 책정시 반영한다.

각 병원에서는 이 밖에도 ‘다른 병원의 동향’을 예의주시한다. 한 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만의 가격 결정 기준은 있지만 다른 병원의 가격을 항상 염두에 둔다”고 말했다. 경쟁 병원이 가격을 높게 책정하면 그보다 약간 낮은 수준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소비자들이 비급여 가격 결정 구조를 알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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