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로 변신한 게이머… “연봉보단 비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3일 03시 00분


■CJ 스포츠마케팅팀 입사한 ‘퍼펙트 테란’ 서지훈 씨

잘나가는 프로게이머에서 스포츠마케터로 변신한 서지훈 씨가 22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변 산책로에서 육상 스타트 자세를 취하며 힘찬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잘나가는 프로게이머에서 스포츠마케터로 변신한 서지훈 씨가 22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변 산책로에서 육상 스타트 자세를 취하며 힘찬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잘나가던 프로게이머였다. 전성기 땐 연봉을 2억 원까지 받았다. 실력을 인정받아 군 복무도 공군 ACE 프로게임단에서 마쳤다. 프로게임단 플레잉코치로 복귀해 제2의 전성기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22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신입 스포츠마케터로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기로 했다. 임요환 이윤열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1세대 프로게이머 서지훈 씨(26) 얘기다.

서 씨는 2000년대 초반 ‘퍼펙트 테란’이란 칭호를 얻으며 e스포츠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그의 성공기는 다큐멘터리 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을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됐다. 연예계 한류 스타 부럽지 않은 인기도 얻었다. 전성기는 지났지만 3, 4년은 충분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주위의 평가였다.

하지만 서 씨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당당히 CJ그룹 스포츠마케팅팀 입사에 성공해 프로게이머 출신 스포츠마케터 1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22일 본보를 통해 이 사실을 처음 밝힌 서 씨는 “그동안 팬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짧게 반짝 하다 잊혀지기보다는 오랫동안 e스포츠를 위해 일하며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프로게이머들은 십중팔구 은퇴 뒤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주로 10대에 전성기를 보내다 보니 정규 수업을 받기 어렵다. 고립된 공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사회성도 부족하다. 어린 나이에 부와 인기를 경험한 탓에 은퇴 뒤 방황하는 선수도 적지 않다.

서 씨는 “1세대 프로게이머로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이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며 “일반 대기업 초봉(3000만 원 기준)의 두 배 이상 되는 플레잉코치직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도전에 나선 이유다”라고 말했다.

특채 형식으로 입사한 서 씨는 CJ그룹 스포츠마케팅팀에서 e스포츠, 골프, 카레이싱 등을 담당하게 된다. 공채 때마다 유학파 등 우수 인재 200명 이상이 몰리는 인기 부서다. 서 씨는 1차 실무 압박 면접과 2차 임원 면접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었다. CJ그룹 인사팀 이종기 상무(45)는 “처음에는 게임만 한 친구라는 편견을 갖고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면접을 해보니 스포츠마케팅의 새로운 모델을 창조할 적임자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서 씨는 프로게이머로는 드물게 대학(아주대 정보 및 컴퓨터공학부)을 졸업했다.

인터뷰 말미가 되자 프로게임단 유니폼이 아닌 양복을 입은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서 씨는 “10년쯤 뒤에는 영화 ‘머니볼’의 빌리 빈 단장처럼 작은 가능성을 크게 키워주는 스포츠마케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서지훈 씨의 이야기는 채널A의 ‘토요뉴스’(24일 토요일 오후 9시)를 통해 보도된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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