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원 드는 사이버테러, 단독범행 의문… ‘재·보선 날 디도스 공격’ 배후 규명 수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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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일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수행비서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마비시킨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사건 배후를 밝히기 위해 수행비서 공모 씨(27)의 입을 여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3일 구속된 공 씨는 구속여부를 결정하는 영장실질심사에서도 혐의를 계속 부인했지만 법원은 “범죄사실이 소명된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사건 배후에 대한 수사는 아직 진척이 없는 상태다. 경찰은 이에 따라 사건 전후 공 씨의 통화기록을 분석하는 한편 공 씨가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을 실행한 대가로 고향 후배 강모 씨(25)에게 금품을 제공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두 사람의 계좌를 집중 추적하기로 했다.

○ 범행 직전 전화 30여 통 집중돼


경찰은 평소 연락이 거의 없던 공 씨와 강 씨가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 전날 밤 30여 차례나 통화하는 등 갑자기 통화량이 급증한 점을 유력한 정황증거로 보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공 씨는 보궐선거 전날인 25일 오후 9시경 필리핀에 있던 강 씨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고 2시간쯤 뒤 강 씨가 부재중 전화 표시를 보고 공 씨에게 전화해 통화가 이뤄졌다. 이후 두 사람은 실제 공격이 이뤄진 이튿날 오전까지 30차례 안팎으로 전화를 주고받았다.

강 씨는 경찰조사에서 이날 통화에 대해 “공 씨에게서 공격 지시를 받고 진행 상황을 공유했다”고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하지만 공 씨는 “강 씨에게 지인의 병원 사업에 투자해 달라고 요청하는 통화였을 뿐 디도스 공격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 연락이 뜸했던 사람에게 투자를 부탁하려고 밤을 새우며 수십 차례 통화를 했다는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강 씨 일행은 좀비 PC 약 200대를 동원해 선관위 홈페이지를 공격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선관위가 홈페이지를 ‘사이버 대피소’로 옮긴 뒤 접속 빈도가 10배 가까이 폭증한 것으로 미뤄 이들이 실제 가동한 좀비 PC는 200대가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경찰은 재·보궐선거일 선관위와 함께 이들로부터 홈페이지 공격을 당한 박원순 서울시장 측으로부터 당시 홈페이지 접속기록 등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조사 중이다.

○ 제3자 개입 없었나?


현재 진행 중인 경찰 수사에는 여러 의문점이 남는다. 경찰에 따르면 강 씨는 선관위와 박 후보 홈페이지를 공격하라는 공 씨의 요구에 대해 그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락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에 선관위 홈페이지를 공격하면 당장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을 알고도 하룻밤 사이에 ‘부탁과 수락’이 이뤄지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도 “강 씨의 휴대전화에 공 씨가 ‘형님’으로 저장돼 있는 걸 보면 친분은 있었겠지만 강 씨가 죄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공 씨의 요구에 바로 응한 건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공 씨와 강 씨가 사전에 범행을 모의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경찰에 따르면 대구에서 홈페이지 제작업체를 운영하던 강 씨 일행은 5월경 서울로 올라왔고 선거 20여 일 전인 10월 초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한 빌라로 이사를 왔다. 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서울에 사무소를 내기 위해 올라왔다”고 진술했지만 두 사람이 서울에서 직접 만나 범행을 계획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 조사 결과 강 씨는 8월 13일부터 선거 나흘 전인 10월 22일까지 악성코드를 유포해 좀비 PC를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강 씨가 필리핀에 간 시점도 재·보궐선거 일주일 전인 10월 20일 출국해 27일 귀국했다. 경찰 관계자는 “강 씨가 공 씨의 지시로 디도스 공격에 쓸 좀비 PC를 만들었을 가능성보다는 경쟁 도박사이트 공격 등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강 씨는 인터넷 등을 활용해 불법적으로 돈을 벌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강 씨의 대구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실적이나 매출은 없는데 직원 6명에게 월급은 꼬박꼬박 준 것으로 나타났다”며 “강 씨가 벤츠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등 부유하게 사는 걸 보면 도박사이트를 운영하거나 신분증과 공문서를 위조하는 방법으로 돈을 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9급 비서로 월급이 200만 원가량인 공 씨가 수천만 원이 들 수 있는 사이버테러를 단독으로 감행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의 경우 좀비 PC를 마련하는 데만 최소 수백만 원이 드는 데다 고도의 위험성을 감안하면 인건비를 포함해 작업비가 수천만 원까지 올라간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때문에 경찰은 공 씨의 금전거래 명세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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