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생선 맡긴 증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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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임직원 최근 3년간 329명 불법매매 징계받아고객 돈 맘대로 굴리고 미신고 계좌로 작전주 매입도

IBK투자증권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지점의 베테랑 직원 A 씨. A 씨는 고객 돈을 직원이 알아서 운용하는 일임매매를 하다가 지난달 금융감독원 검사 때 적발됐다. 당시 파악된 자금운용 규모는 무려 700억 원대에 이르렀고 거래 종목 수만 200개가 넘었다. 금감원은 조만간 금융위원회를 열어 강력히 징계하기로 했다.

최근 감사원이 금감원을 감사하는 과정에서 증권사 임직원들의 불법주식거래 실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실제로 최근 3년간 증권사 임직원 329명이 불법매매를 일삼다 징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임직원들의 불법행위는 고객 돈을 마음대로 운용하는 일임매매, 증권사에 신고하지 않고 사실상 자기 명의 계좌로 주식을 매매하는 자기매매, 업무상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한 내부거래, 금융실명법 위반 등 다양한 형태로 벌어진다. 징계 대상자에 대해 증권가에선 ‘운이 나빴다’는 동정론이 일 정도로 임직원의 불법 주식투자는 은밀하게 이뤄진다. 금융당국조차 전체 불법매매 규모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다.

9일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1∼9월 불법매매가 적발된 증권사 임직원은 총 54명으로 주의적 경고, 감봉, 견책 등의 징계를 받았다. 하나대투증권의 징계 대상자가 11명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증권(8명), UBS증권(7명), 대우증권(7명), 부국증권(4명) 등의 순이었다.

전체 징계 대상자는 2009년 179명, 2010년 96명에 비해 감소한 듯 보이지만 불법매매가 과거보다 수면 아래서 조직적으로 이뤄져 적발 자체가 힘들어진 점을 감안하면 ‘불법이 줄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김건섭 금감원 부원장보는 “검사 인력이 부족해 전체 증권사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불법거래가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불법매매가 가장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임직원의 자기계좌 매매는 2009년 2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이 시행되면서 새롭게 허용된 것이다. 회사 내 엄격한 감시가 이뤄지는 만큼 미국처럼 자기매매를 허용해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많았다. 특히 분기별로 거래명세를 사후 보고하는 조건이 달려 있어 무분별한 거래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증권사 임직원들이 제약 없이 자유롭게 주식 투자를 하고 싶어 하는 데서 불법이 싹텄다. 투명하게 드러나는 계좌로는 이른바 ‘작전주’를 사기도 어렵고 짧은 시간 내에 사거나 팔기를 반복하는 단타매매도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자기매매계좌와 관련해 모든 증권사는 임직원이 계좌를 1개만 보유토록 하는 등의 내부규정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2개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임직원이 많다. 감사원은 최근 금융공기업인 산은금융지주 자회사인 대우증권과 기업은행 자회사인 IBK투자증권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결과 주요 검사대상 임직원의 절반 이상이 불법으로 여러 개의 계좌를 보유한 사실을 적발했다. 증권가에선 임직원들이 다른 증권사에 개설하거나 타인 명의로 만든 계좌를 개인투자계좌라는 의미의 ‘모찌 계좌’라는 일본식 은어로 부른다.

내부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하거나 고객의 금융정보를 유출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삼성증권 내부의 자산운용 관련 팀은 2009년 7개 회사의 기업어음을 신탁재산에 포함하면서 전화와 메신저로 이 어음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를 다른 팀에 알려줬고, 이 정보는 결국 지점에까지 흘러갔다. 자본시장법에서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부서 간에는 정보 교류를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지만 이 증권사에선 부서 간 칸막이가 제대로 쳐져 있지 않았다.

증권사 임직원들의 불법매매는 해당 거래 자체가 주가를 왜곡하는 원인이 돼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주가가 왜곡되면 증시를 통한 기업의 자금조달이 힘들어지고 이는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 무엇보다 증시 자금의 원활한 흐름을 책임져야 할 증권사 임직원들의 불법행위는 증시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훼손시킨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감독을 강화하는 한편 불법매매를 한 사람에 대한 처벌의 강도를 높여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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