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車 ‘노조위원장 선거’ 부정… 사상 첫 재선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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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노총 탈퇴’ 주장한 후보 당선저지 의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지부장 선거에서 무더기 대리투표가 벌어져 선거결과가 무효로 되고 재선거를 치르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기아차 노조(기아차 지부)는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조 소속이다.

18일 고용노동부와 기아차 지부에 따르면 기아차 지부는 12일 22대 지부장 선거 1차 투표를 치렀다. 투표 결과 1위는 배재정 후보(기호 2번·8632표), 2위는 김성락 후보(기호 1번·6714표), 3위는 박홍귀 후보(기호 4번·6660표), 4위는 가태희 후보(기호 3번·4706표)였다. 기아차 지부는 1위 배 후보와 2위 김 후보를 놓고 결선 투표를 치를 예정이었다.

대리투표 의혹은 3위인 박 후보가 상당수 투표용지가 해당 조합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서명을 받고 배포됐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예를 들어 A조합원이 직접 서명하고 받아가야 할 투표용지를 다른 사람이 서명하고 받아갔다는 것.

박 후보 측은 2009년 민주노총 탈퇴와 노조 변화를 주장하며 1만여 명의 조합원 서명을 받은 바 있으며, 당시 서명부와 이번 투표용지 수령 서명을 일일이 대조해 그 결과를 기아차 지부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했다.

고용부와 기아차 지부에 따르면 기아차 선관위는 박 후보 주장을 받아들여 표본으로 680여 표를 재검표했으며, 80여 표가 부정투표임을 확인했다는 것. 이에 따라 17일 기아차 선관위는 선거를 무효로 처리하고 일주일 안에 재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2위 김 후보와 3위 박 후보의 표차는 54표로 표본조사 결과만으로도 당락이 뒤바뀔 수 있는 표차다. 대리투표는 기아차 5개 지부(소하 화성 광주 판매 정비) 중 판매 지부에서 상당수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차 노조에서 부정선거로 재선거가 치러지는 것은 처음이며, 다른 노조에서도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노동계와 기아차 지부 안팎에서는 그동안 민주노총 탈퇴를 주장해온 박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대리투표가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후보는 온건 실리 성향으로 2009년 21대 지부장 선거 당시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규약 개정을 요구하고 거부될 경우 금속노조 탈퇴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반면 2위 김 후보는 민주노총 대의원, 금속노조 중앙위원 등을 지낸 친(親)민주노총 계열이다.

노동계의 한 핵심 인사는 “당초 박 후보가 판매 지부에서 20% 정도를 얻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 투표에서는 7∼8%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며 “박 후보의 당선 또는 김 후보의 탈락을 막기 위해 대리투표가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구 채널A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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