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역 오늘부터 야간노숙 전면 금지… 퇴거 앞둔 노숙인들 만나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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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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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생존공간인데… 어디로 갈지”

19일 오후 성균관대 사회복지연구소 김선미 연구원(왼쪽)이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롯데마트 앞에서 노숙인과 대화를 하며 실태 조사를 하고 있다. 코레일은 22일부터 서울역 노숙인들을 강제 퇴거시키기로 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9일 오후 성균관대 사회복지연구소 김선미 연구원(왼쪽)이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롯데마트 앞에서 노숙인과 대화를 하며 실태 조사를 하고 있다. 코레일은 22일부터 서울역 노숙인들을 강제 퇴거시키기로 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앞으로 지금보다 더 밑바닥 삶을 살게 되겠죠.”

노숙인 이모 씨(51)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이 내민 ‘서울역 야간노숙행위금지조치에 대한 노숙인 인권실태 설문조사’ 종이를 받아 들고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19일 밤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그는 22일 강제퇴거 조치를 앞두고 근심이 가득했다. 그는 “그동안 서울역은 눈과 비를 피하는 ‘생존 공간’이었다”며 “어디까지 밀려날지 두렵다”고 했다.

코레일은 22일부터 시민 안전 및 서울역 이미지 제고를 위해 역내 야간 노숙행위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인권위는 이번 조치가 노숙인 인권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9일부터 3주간 노숙인 100여 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기자는 11일과 19일 이틀간 조사를 맡은 김선미 성균관대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와 동행해 노숙인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 “잠 한번 푹 자고 싶은데”

상대적으로 재활의지가 강했던 노숙인들도 이번 강제퇴거를 앞두고는 한숨이 늘었다. 그나마 역사 안에서 몇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면 다음 날 일자리를 구하러 가거나 소일거리라도 할 수 있는 체력이 생기지만 잠을 못 자 피로가 누적된 날은 힘이 나질 않는다. 11일 밤 서울역 앞에서 만난 노숙인 김모 씨(43)는 “낮에 폐지라도 주워야 동전 몇 개라도 벌 수 있는데 이제 그조차 어렵게 됐다”며 “몇 시간이라도 푹 자보는 게 소원”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신변 안전도 걱정이다. 한 50대 남성 노숙인은 “서울역 인근의 퇴물 조직폭력배들이 술만 마시면 우리 괴롭히는 재미로 광장에 나온다”며 “노숙인은 맞아도 싸다고 생각하는지 하소연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19일 오후 11시경 덩치 큰 사내 여러 명이 노숙인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광경이 쉽게 눈에 띄었다. 한 여성 노숙인은 설문조사도 거부한 채 종종걸음으로 광장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김 연구원은 “여성 노숙인은 성폭력 위협 때문에 불안과 망상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며 “마음이 불안하니 잠도 못 자고 계속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보호 시설 입소 꺼려

노숙인이 역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이번 강제 퇴거 조치를 앞두고 역 인근 여관과 여인숙, 고시원 등에 50여 명이 이용할 수 있는 응급구호방 10곳을 비롯해 노숙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유카페’를 마련했다. 거리 청소 등의 일자리도 제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문제는 구속받기 싫어하는 노숙인이 단체 시설에 입소할 의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설문조사에 응한 노숙인 대부분은 ‘대책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거나 알더라도 참여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한 노숙인은 “쉼터 등 보호시설마다 노숙인 통제가 엄격하다”며 “억압되는 단체 생활은 싫다”고 했다. 올해로 32년째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정모 씨(63)는 “불쾌감을 주는 것은 알코올의존증이 심한 일부 노숙인뿐”이라며 “노숙인 전체를 내모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연구원은 “서울역 내에 노숙인을 포함해 취약계층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노숙인에게 필요한 복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인권위는 다음 달 말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코레일 등에 대안 마련을 권고할 예정이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이충우 인턴기자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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