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왕 ‘좌초’시킨 경리직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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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 탈루 혐의 권혁 회장 거제에 호텔짓다 처제등 ‘횡령’
당시 해고된 자금담당 직원… 국세청-검찰에 비리제보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해외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4100억 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혐의(조세범처벌법 위반)가 드러나 검찰에 고발된 권혁 시도상선 회장(61). 그는 불과 2, 3년 전까지도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사업가였다. 선박 및 항공기 임대사업은 나날이 번창해 회사의 자산규모는 10조 원을 넘겼고 보유선박의 수리를 맡기기 위해 전남 목포 지역의 조선소 인수를 검토할 정도로 자금 사정도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서 불거졌다.

14일 법조계와 해운업계에 따르면 권 회장의 처제인 시도항공여행 대표 김모 씨(48)는 2007년 초 경남 거제시 일운면에 씨팰리스 호텔을 짓기 시작했다. 거제 지역의 조선소를 찾는 외국인 선주 등 장기 투숙객을 타깃으로 한 이 호텔은 2009년 초 완공됐다.

직원 수가 10명 남짓에 불과하고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시도항공여행이라는 회사가 호텔 사업에 손을 대자 거제 지역에서는 좋지 않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시도항공여행이 공사비를 부풀려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이 돈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역 정치인들에게 흘러들어 갔다는 것.

창원지검 통영지청은 이 같은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시도항공여행의 자금거래 내용을 뒤지는 등 수사를 벌였다. 검찰은 결국 정치권 로비를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김 씨가 시공업체와 짜고 공사비를 부풀린 가짜 세금계산서를 만들어 은행에서 80여억 원을 부정대출 받고 회삿돈 3억 원을 횡령한 사실을 확인했다. 김 씨와 김 씨를 도운 회사의 자금담당 직원 A 씨 등 2명은 이 일로 지난해 9월 법원에서 모두 유죄가 확정돼 각각 징역 1년 6개월∼3년의 집행유예 및 6억 원씩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호텔 사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권 회장은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권 회장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해 말썽을 일으키고 처제 김 씨의 회삿돈 횡령에 가담한 A 씨를 해고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세무조사가 시작됐고 시도상선 주변에서는 A 씨가 앙심을 품고 자신이 갖고 있던 비밀장부를 국세청에 넘겼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A 씨는 검찰에도 자신이 알고 있는 권 회장 일가의 비리를 제보했고 검찰은 이 사건을 경찰에 내려보내 수사하도록 했다. 국세청이 권 회장을 고발한 직후 A 씨가 제보한 사건은 다시 검찰로 송치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이성윤)에 재배당됐다.

시도상선은 국세청의 고발 이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하는 등 검찰 수사와 이후의 각종 민형사 소송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수사나 소송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간에 시도상선과 권 회장이 입을 피해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통영지청의 씨팰리스 호텔 수사가 시작된 이후 시도상선 측은 조선소 인수는 물론이고 중화경제권에서 추진하던 대규모 부동산 개발사업 일정 등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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