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념하는 총학생회 KAIST 총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11일 오후 학교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유명을 달리한 학생들과 교수를 위해 묵념하고 있다. 총학생회는 이날 서남표 총장의 무한경쟁 정책 철폐를 요구했다. 대전=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KAIST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 사태로 세계의 명문대학들은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어떻게 학생을 관리하는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 명문대는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졸업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학생들 간에 경쟁이 아주 치열하지만 대학들은 신입생이 입학할 때부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성적이 뒤처지는 학생에게는 튜터 제도를 활용해 부진한 과목을 보충할 수 있는 기회도 준다.
○ 수재들을 울리는 학습 강도…학교 측의 세심한 배려
미국 뉴욕 시에 있는 아이비리그 명문인 컬럼비아대 도서관은 시험 때가 아니어도 도서관에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미국 명문대에 진학한 한국 유학생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미국대학은 그야말로 ‘공부하기 위해 모인 곳’이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대학에서 학점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은 흔치 않다. 물론 미국 대학에서도 자살은 자동차 사고 다음으로 높은 사망 원인이다. 지난해 자살한 대학생이 1100여 명에 이른다.
뉴욕 주 이타카에 있는 코넬대는 이번 학기 들어 학생 6명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코넬대는 아이비리그 대학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측은 심리 치유를 적극 권장하고 학생들의 자살 장소로 자주 이용되는 서스턴 애버뉴 다리 곳곳에 자살 방지 스티커를 붙였으며 경비원도 배치했다. 또 캠퍼스 경찰이 정기적으로 순찰하고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교직원들이 캠퍼스 내에서 기숙사와 교실 문을 열어보면서 학생들의 상태가 괜찮은지 직접 확인하기도 한다. 2002년 이후 미국 공군이 사용하는 자살방지 매뉴얼을 학생 관리에 이용하고 있다. 여러 겹의 조언자를 지정해 자살 징후를 촘촘하게 진단하는 기법이다.
○ 튜터 제도 등 학생 관리에 중점
미국 대학에선 성적이 우수하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우선적으로 주어진다. 성적이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징벌적 차원에서 장학금을 토해내야 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물론 일정 학점을 유지해야 장학금을 계속 받을 수 있다는 단서는 있지만 학점 때문에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등 명문 대학들은 튜터 제도를 적극 활용한다. 석사 및 박사 과정 학생이나 성적이 뛰어난 학부 3, 4학년 학생들이 수학 물리학 통계학 등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기초 과목에서 성적이 부진한 학생을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영어가 원활하지 못한 경우 ‘라이팅(writing)’을 도와주는 센터도 별도로 설치돼 있다. 노스캐롤라이나대(채플힐)에선 학생 기숙사 근처에 ‘학습센터’를 마련해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위해 대학교수 출신의 전문 카운슬러를 두고 카운슬링 서비스를 한다.
일본은 경제침체가 이어지면서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취업 스트레스가 심하다. 일본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에 실패해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학생이 46명으로 전년도(23명)의 2배였다. 이에 따라 대학이 사전예방 프로그램을 마련한 경우가 많다. 도쿄(東京)대 대학원은 7일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새내기들에게 “우울해지거나 자살 충동을 느끼는 등 심리적 이상 현상이 발생하면 곧바로 학교에 상담을 요청하라”고 당부했다. 사법시험 합격률 선두권을 다투는 국립 히토쓰바시(一橋)대 법학대학원은 매년 학생들을 상대로 의무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 우울증세, 성적 중압감 등에 대한 체크를 철저히 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진로 목적에 따라 그랑제콜, 일반 대학, 전문학교 등 다양한 수준의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기 때문에 명문대 편중에서 비롯된 사회병리적 현상이 한국보다 훨씬 덜하다. 특히 전공 분야별로 대학 위의 엘리트 대학으로 불리는 그랑제콜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 후 2년의 입학예비과정을 거치면서 실력을 인정받고 단련된 소수의 학생들만 입학하기 때문에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우울증이나 학업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대다수 학교는 담당 교수를 배치해 학생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파리정치대 관계자는 “학생이 원할 경우 교수는 물론이고 학업을 도와주기 위한 동료를 직접 연결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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