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제자 최건섭 변호사의 황적화 부장판사에 관한 소고(小考)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3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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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월21일자 A29면 <초대석-3년 연속 우수법관에 뽑힌 황적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기사와 관련해 황 부장판사의 사법연수원 제자인 최건섭 변호사가 글을 보내왔습니다.

황적화 부장판사님이 2008~2010년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실시한 법관평가에서 상위 15명의 우수법관에 연속 선정되셨다는 소식에 저는 매우 기쁘고 약간은 들뜨기까지 했습니다. 사법연수원 때 우리 반 민사지도교수이셨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아직 황 교수님의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아본 적이 없으나 황 교수님의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아본 다른 변호사들을 통하여 부드럽고 성의 있는 재판진행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

황교수님은 2005년 2월 35기 사법연수생들이 2년차로 접어들 때 사법연수원 3반의 민사지도교수로 오셨습니다. 저는 늦깎이 사법연수생으로 35기 3반 반장이자 A조에 속하고 있어 자연히 황 교수님을 가까이서 뵐 기회가 많았습니다. 사법연수원에서는 한 반 약 60명을 약 20명씩의 세 개조로 나누었는데 A조는 전통적으로 민사지도교수님을 담임교수님으로 모셔 왔습니다.

사법연수원은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처음으로 법조계의 인물 및 문화를 접하는 곳이입니다. 사법연수원의 교수로 발령받은 분들은 대개 법원 및 검찰에서 그 인품과 학식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법연수생들이 교수님들에게 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황 교수님은 부드럽고 소탈한 성품과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다른 교수님들에 비하여 도드라진 특징을 지닌 분으로 기억됩니다.

황교수님의 이력은 다른 법조 엘리트들과 달리 독특했습니다. 1975년 덕수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취직해 몇 해를 지내시가다 군대를 다녀와서 성균관대 법학과에 입학하여 법학을 공부하고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셨습니다.

사법연수생 몇몇과 황 교수님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일 때면 그 분의 성장기를 즐겨 듣곤 했습니다. 타고난 자질과 성장기의 환경이 황 교수님의 소탈하고 견결하며 휴머니즘에 충만한 성품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황 교수님은 1956년 황해도에서 부산으로 피난 내려온 부모님에게서 태어났는데, 의사인 황 교수님의 아버님은 일찍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황 교수님은 아버지를 가난했지만 인술을 펼치시던 훌륭한 분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황 교수님의 어머니는 군대에서 사고로 큰 부상을 당해 군병원에 있는 아들을 위해 거의 매일 시골길 버스를 타고 면회를 오셨다고 합니다. 황 교수님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당신 자신이 뚫고 나온 인생 역정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처음으로 맡은 사건은 용역대금청구의 피고로서 소액사건의 제1심에서 패소한 동창 친구가 가져온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항소심 수행과정에서 처음으로 재판부의 거칠고 고압적인 태도를 접하고 즉시 항의조차 하지 못한 억울함으로 며칠 밤을 설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황 교수님과의 술자리에서 그 때의 그 심정을 토로하였더니 황 교수님은 다소 거칠 수도 있었을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셨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억울한 심정은 상당히 풀리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황 교수님께 '리콜'을 신청합니다. 낯설고 어려운 법률문제에 부닥치면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황 교수님은 바쁘신 와중에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관련판례를 찾아 보내주시곤 하셨는데, 요즘은 죄송한 마음에 이제 중견 판사들로 성장한 연수원 동기인 판사들에게 전화하여 물어보곤 합니다. 그러나 아직 황 교수님의 내공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합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사법연수원 동기인 검사가 경남 진주시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황 교수님을 주례로 모셨고 저는 신랑이 제공한 버스를 타고 교수님과 함께 서울에서 진주까지, 진주에서 서울까지 왕복했습니다. 결혼식까지 시간이 좀 남았는데 황 교수님께서는 "마음을 정갈히 하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근처 공원을 혼자서 산책하고 오겠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벌써 결혼식 주례가 벌써 몇 번째인데….

하객 석 뒤쪽에 앉아서 황 교수님의 주례사를 듣고 있으니 과연 훌륭하게 결혼식을 이끌어가셨습니다. 부드럽고 침착한 분위기, 기승전결의 진행, 적당한 유머와 길이, 호소력 있는 교훈과 지침. 저는 혼자서 '아마도 황 교수님은 어제 밤에는 사모님과의 관계도 멀리하고, 오늘 새벽에는 일찍 목욕탕에도 다녀오셨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법연수원 35기 3반 반장 최건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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