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e TOWN]제10회 전국 논술 경시대회 전체 대상 인천 숭덕여고 서보미 양

  • 동아일보

“뭘 읽든 비판-분석, 그리고 대안 찾아요”

《 논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학입시에서 수시전형으로 선발하는 인원이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하면서 수시 선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대학별 고사의 비중이 높아진 것. 이에 따라 분석력과 논리력을 요하는 논술고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언어 논술뿐 아니라 통합교과형 논술의 비중이 커지면서 ‘논술 제시문을 어떻게 이해하고 글로 풀어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학생이 적잖다.

인천 숭덕여고 1학년 서보미 양(16)은 최근 한국인문사회연구원이 주최하고 동아일보사가 후원하는‘제10회 전국논술경시대회’에서 전체 대상을 수상했다. 이 대회는 △초등 3·4학년 △초등 5·6학년 △중등 1·2학년 △중등 3학년 △고등 1학년 △고등 2학년 인문계와 자연계 부문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유형의 문제가 나왔다. 평가기준은 △논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 △제시문 이해도 △논리 일관성 △논거의 타당성 △문장표현의 적확성. 서 양은 고등학교 1학년 공통 유형에 응시해 100점 만점에 97점으로 최고점을 받았다.

비결이 무엇일까? 서 양은 “어떤 상황에서든 비판적, 분석적으로 생각해 온 습관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서 양에게 논술을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들어보자. 》
이번 대회 고1 공통유형 문제로는 제시문을 간단히 요약하는 논제1과 제시문을 요약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논제2가 출제됐다. 두 문제를 모두 풀어 1300자 이내로 서술하는 것이 과제.

난제는 논제2였다. 논제2로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 ‘성범죄자의 전과가 있는 사람에게 전자발찌를 채우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토론문이 지문으로 주어졌다. 학생들은 3개의 지문을 모두 요약한 뒤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서술해야 했다.

제시문으로 문학작품이 나오면 주인공의 성격과 이미 알고 있는 줄거리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 하지만 서 양은 세 개의 제시문을 관통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했다. 서 양은 “주어진 제시문 안에서 인물들이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중심으로 읽고 한 문장으로 요약해봤다”고 말했다.

‘제10회 전국논술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인천 숭덕여고 1학년 서보미 양. 서 양은 “글을 쓸 때 구획을 나눠 정리하면 중요한 내용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10회 전국논술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인천 숭덕여고 1학년 서보미 양. 서 양은 “글을 쓸 때 구획을 나눠 정리하면 중요한 내용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요약해보니 ‘선행을 베푸는 장발장을 바라보는 자베르 경감의 딜레마’ ‘범죄자의 낙인이 찍혔음에도 착하게 살고 있는 헤스틴 프린의 모습’ ‘성범죄자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서 양은 ‘범죄자의 인권을 제한하는 것보다 범죄자를 교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제를 정하고 꾸준한 사회봉사와 주기적인 심리상담을 대안으로 적었다.

서 양은 논술을 쓰기 전 머릿속으로 완성된 글을 그려본다. 그리고 적당한 분량을 지정해둔다. 이번 대회에서도 서 양은 논제2의 답을 써야 하는 1000자를 150∼300자씩 다섯 구획으로 나눴다. 그리고 △제시문 요약 △제시문 ‘다’와 다른 자신의 의견 제시 △성범죄자의 인성교육을 위한 첫 번째 대안인 사회봉사 △두 번째 대안인 심리상담 △결론으로 나누어 글을 썼다. 이렇게 하면 글에 꼭 들어가야 하는 내용을 잊지 않을 수 있고 논리적인 글을 완성할 수 있다는 설명.

글을 쓰기 전 구획을 나눠 어떤 내용을 적어야 하는지 정해두는 습관은 학교 과학부 활동 중 실험보고서를 쓰면서 체득한 것. 실험보고서를 쓸 땐 문제 원인, 과학 원리, 실험 순서, 결과 등을 칸마다 채워 넣으며 정확히 기록하곤 했다.

“즉흥적으로 글을 쓰다보면 서론이 너무 길어지거나 미사여구가 많아져서 문제였어요. 그래서 논술을 쓸 때도 실험보고서를 쓰듯 정리해봤죠. 필요한 내용을 범위에 맞춰 써내려가다 보면 중요한 내용을 놓치지 않고 서술할 수 있어요.”(서 양)

서 양은 “평소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생각했던 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했다. 그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학교에서 준 ‘독서기록장’을 작성해왔다. 독서기록장은 내용 요약과 느낀 점 작성으로 구분돼 있다. 서 양은 “책을 읽고 자신의 감상을 적는 ‘느낀 점’ 칸에 주인공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평가해보는 글을 썼다”고 말했다.

최근 그는 최인훈의 ‘광장’을 읽고 주인공의 행동을 사회적 문제인 ‘자살행위’와 연결시켜 비판하는 글을 작성했다. 서 양은 “주인공이 왜 자살을 선택해야 했는지, 다른 국가로 망명하는 등의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서 양은 ‘구체적 대안을 타당하게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논거를 제시하는 법은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배웠다. 서 양은 “매일 아침 뉴스를 보며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슈가 있을 때는 친구, 선생님의 의견을 들어본다”고 했다.

“며칠 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었을 때 저는 ‘평화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평화도 중요하지만 현재 한국과 북한은 휴전 중이란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죠. 전 남북의 문화적, 경제적 차이를 근거로 들며 통일은 꼭 평화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어요.”(서 양)

서 양은 “누군가에게 내 의견을 설득시키려 노력하다 보니 저절로 근거를 제시하면서 이야기를 하게 됐다”면서 “타당한 근거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글을 완성도 있게 만든다”고 말했다.

유명진 기자 ymj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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