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반국가단체로만 볼수없다”… 박시환 대법관 소수의견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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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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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실천연대는 이적단체’ 판결문에 포함

박시환 대법관(사진)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남북공동실천연대 집행위원 김모 씨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법원이 (북한을 무조건 반국가단체로 인정하는) 기존 판례를 탈피하지 않으면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결을 법원 스스로 재심판결로 뒤집는 치욕스러운 일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의견을 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22일 대법원에 따르면 박 대법관은 7월 23일 김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지금이라도 국가보안법의 해석, 사상과 표현의 자유 제한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며 이 같은 의견을 냈다. 그는 “그러지 않으면 다시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거나 공안담당기관이 권한을 남용해 국보법을 방만하게 적용할 경우 과거 ‘인민혁명당 사건’이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전례처럼 대법원 확정판결을 재심을 통해 무효화하는 일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법관은 “북한이 실질적으로 국가와 다름없는 체제와 구조를 갖추고 대한민국 역시 북한을 여느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상대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 북한을 대한민국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단체라고만 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폈다. 또 “북한의 반국가단체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해도 특정 사건에서 북한이 반국가단체인지는 검사가 입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천연대 사건은 당시 이적표현물 소지 사실만 입증되면 이적행위 목적이 있다고 인정해온 기존 판례를 이적행위 목적의 입증 책임을 검사에게 지우는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대법관 13명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넘겨진 상태였다.

하지만 박 대법관이 재판의 쟁점과는 무관한 ‘재심 무효화’와 ‘북한 반국가단체 불가’ 주장을 펴면서 대법관들 사이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이용훈 대법원장까지 나서 말렸지만 박 대법관은 끝내 뜻을 꺾지 않았고 결국 ‘북한을 무조건 반국가단체로만 볼 수 없으므로 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규정하는 데 반대한다’는 소수의견을 판결문에 포함시켰다.

이에 양승태 김능환 차한성 민일영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북한의 반국가단체성에 대한 보충의견을 통해 박 대법관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양 대법관 등은 “(박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이번 판결이 가지는 (이적행위 목적 추정 금지라는) 의의에 합당한 관심을 두지 않고 국보법과 관련해 확립된 대법원 판례를 이 판결에서 비난하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적었다. 대법관들은 다수 의견으로 ‘이적행위 목적 추정 금지’로 판례를 변경하면서도 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규정해 김 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편 대법관 출신인 김황식 국무총리는 2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주광덕 의원이 이번 논란에 대해 질문하자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것은 공지의 사실로 검사가 따로 입증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며 “(박 대법관의 견해는) 헌법가치 체계와 국민 정서로 볼 때 조금은 앞서 나간 의견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 박 대법관은 진보성향 법관모임 ‘우리법연구회’ 창립주도… ▼
2003년 사법파동 촉발… 盧전대통령이 발탁


박시환 대법관(57·사법시험 21회)은 진보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창립을 주도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김용철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하자 소장판사 430여 명이 서명운동을 벌인 ‘제2차 사법파동’은 우리법연구회 설립의 계기가 됐고 당시 평판사였던 박 대법관은 이 모임의 이름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대법관은 이후 1993년 제3차 사법파동에서는 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협의회 공동의장을 맡아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서울지법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던 2003년에는 서열 위주의 대법관 인사에 반대해 사표를 냈고, 이는 제4차 사법파동의 도화선이 됐다. 재임 중 사법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11월 그를 대법관에 발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대법관이 된 이후에도 이 같은 행보는 바뀌지 않았다. 박 대법관은 지난해 신영철 대법관의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 재판 개입 논란이 불거지자 “지금 상황은 5차 사법파동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동아논평 : 참여연대는 시민단체인가
▲2010년 6월16일 동아뉴스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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