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공교육은 살아있다” 교실을 바꾸는 명품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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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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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샌가 ‘스승’이라는 말은 마치 전설 속의 단어인양 사그라지고 있다. 인터넷에는 무능, 비리, 폭력 등 교사를 비하하는 잔인한 표현들이 그 빈 자리를 채운다. 밤늦게까지 학원과 과외수업을 받고는 다음 날 학교수업에선 엎드려 자는 학생들 앞에교사는 무력하다. 추락한 교권과 무너진 공교육을되살리려면 교사들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희망은 있다. 사교육에 빼앗긴 ‘가르침’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교사들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사교육의 스타강사들 못잖게 톡톡 튀는 개성과 학생 중심의 수업방식으로 학생들의 사랑과 인기를 한 몸에 받는 고교 교사 6명을 소개한다.》


교사가 수업중 종이비행기를 수십개 날리고, 연극배우처럼 춤추고 연기하고…

부산 동고 국사시간에는 종이비행기가 날아다닌다. 동고의 명물, 정종혁 교사의 수업 때 벌어지는 풍경이다. 그는 수업 전 손수 접은 20개가량의 종이비행기를 준비해 교실에 들어온다. 수업 중 ‘돌발퀴즈’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의상이 정립한 사상으로 모든 존재가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으면서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사상은 무엇일까요? 공부할 시간 10초 주겠습니다.”

정 교사는 매 시간 진도를 마무리하면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퀴즈를 낸다. 비행기에 맞은 학생은 문제에 답해야 한다. 대답을 못하거나 오답을 말한다면? 교탁 앞에 준비된 세숫대야에 담긴 찬물로 세수를 한다. ‘정신 차리고 공부하자’는 의미다.

정 교사가 날리는 비행기는 어디로 날아갈지 종잡을 수 없다. 일반적인 종이비행기 접기 방법과 다른 방식으로 접은 ‘특수제작’ 비행기이기 때문. 수평을 그리며 천천히 날다가도 급격히 좌우로 꺾이기도 한다. 그 덕분에 정 교사의 수업은 언제나 흥미진진함과 긴장감이 넘친다. 어떤 학생이 비행기에 맞으면 당사자는 물론 주변 학생들까지 ‘아앗!’ 하는 고함을 지른다. 비행기가 아슬아슬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면 안도의 웃음을 터뜨린다.

이 학교 1학년 하휘윤 군은 “이미 여러 명이 세수한 물에 또 세수하기가 싫어서 바짝 긴장한 채 공부할 수밖에 없다. 이 시간엔 조는 학생이 한 명도 없다”며 웃었다.

수업의 재미를 높이기 위해 정 교사는 인터넷 게임에서 영감을 얻어 ‘실드(shield·방패)’라는 아이템도 마련했다. 문제를 3회 연속으로 맞힌 학생은 이 아이템을 얻는다. 다음번 비행기를 맞을 때 “실드!”라고 외치면 문제풀이를 면할 수 있다. 이른바 ‘4대 반장’이 되어도 자동으로 실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4대 반장? 정 교사에게 수업진도를 알려주고 수업 자료를 챙기는 ‘학습 반장’, 수업이 끝나는 시간을 알려주는 ‘타임 반장’, 떨어진 비행기를 회수해 재활용토록 해주는 ‘바인더 반장’,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놓는 ‘물통 반장’이 그들이다.

정 교사는 교직에 몸을 담은 10년 전부터 수업시간에 종이비행기를 날려 왔다. 교사의 꿈을 품고 있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옥상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던 중 이를 나중에 수업 시간에 활용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그는 “이미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퀴즈는 자칫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는데 종이비행기를 날리니 학생들이 퀴즈 시간을 재미있어 한다”고 전했다.

수업 중 몸을 불사르는 연기를 선보이는 교사도 있다. 경기 죽전고의 조준익 문학교사가 그 주인공. 조 교사는 그날 가르치는 시, 희곡 등 문학 작품에 따라 ‘배우’가 된다. 특히 희곡 작품을 가르칠 땐 각 등장인물의 성격에 따라 표정과 목소리 연기를 달리하며 실감나게 대사를 읽어준다.

얼마 전 희곡 ‘만선’을 강의할 때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실성하게 된 ‘구포댁’의 모습을 재현했다. “그래! 난 미쳐부렀다. 지화자 좋구나!”라며 높은 톤의 여성목소리를 내는 조 교사의 모습에 학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소품도 다양하게 활용한다. 자연에 무모하게 맞서는 주인공 ‘곰치’의 우직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야구방망이를 든 채로 곰치의 대사를 읊는다. 조지훈의 시 ‘승무’를 가르칠 땐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라는 구절을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신문지로 만든 고깔을 쓰고 승무를 추었다.

조 교사는 “한 반 학생 수가 많고 수업 준비 외에도 교사 업무가 많은 현장의 사정 등을 이유로 동영상 같은 다양한 자료를 활용한 수업이 어려울 때가 많다”면서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는 수업을 하려는 고육책으로 직접 연기를 하게 됐다”고 했다.

이 학교 2학년 박지인 양은 “선생님 수업을 듣고 나면 재미난 연극을 한 편 본 느낌이 든다”면서 “교과서를 평소 목소리로 줄줄 읽기만 하면 내용이 기억에 오래 남기 어려웠겠지만, 선생님이 연기하시는 장면을 떠올리면 작품의 주제와 특징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서울외국어고 중국어과 김명원 교사도 수업 때 ‘몸짓’을 적극 활용해 화제다. 중국어에서 음의 높낮이를 표시하는 성조(聲調) 개념을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2001년에 ‘성조춤’을 개발한 것이다. 이는 각 성조의 특징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춤. 예컨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소리인 2성을 발음할 때는 손을 배꼽높이에서 위쪽으로 쭉 뻗는 동작을 한다. 내려갔다 올라오는 소리인 3성을 발음할 땐 주먹을 꽉 쥐고 쭈그려 앉았다 온몸을 한순간 쫙 펼친다.

그는 “교직생활 초반엔 근엄한 표정으로 엄숙하게 수업을 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집중을 잘 하지 못해 수업방식을 바꿨다”면서 “교사는 일종의 연기자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효과적인 수업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 좋은 ‘왕’이 되겠습니다”… 수업 전 반드시 ‘세자선서’

“좌절금지… 최고야… 꺅…”
발표수행평가용 이색 도장 준비, 한학기 30장 모으면 점수 5점


서울 상명고 김혜숙 한문교사는 학생들 사이에서 ‘엄마’로 불린다. 고민을 상담해 주거나 학습계획표를 함께 짜주는 등 학생들을 친자식처럼 챙기는 모습에서 나온 별칭이다.

김 교사는 특유의 세심함을 살려 도장을 수행평가에 활용한다. ‘좌절금지’ ‘최고야’ ‘꺅’ 등 유머러스한 문구와 캐릭터가 새겨진 도장을 10개쯤 갖고 있다. 학기 초 학생들에게 A4 용지 위에 30개의 네모 칸이 그려진 ‘발표 활동 기록지’를 나눠준다. 수업 중 간단한 퀴즈를 내고 이를 맞히는 학생의 활동지에 도장을 찍어주는 것.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도장 30개를 모으면 수행평가 점수 5점을 받을 수 있다.

‘고등학생들이 고작 도장 하나에 열광할까?’라는 의심은 금물. “커피전문점의 음료 쿠폰 도장을 열심히 모으듯 학생들은 이 도장을 모으는 재미가 있는가 봐요. 두보의 한시를 다루는 시간에 시의 형식이나 주제에 대해 질문하면 너도나도 대답하려고 손을 들어요(웃음). 문양이 독특하고 귀엽다 보니 같은 문양의 도장을 찍어주면 오히려 학생들이 ‘다른 모양으로 찍어달라’고 졸라요. 도장 수업은 6년 전부터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시작한 비책입니다.”(김 교사)

요즘엔 학생들의 인성문제가 심각한 데다 예절을 보이는 것 자체가 경쟁력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된 만큼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힘을 쏟는 교사들도 있다.

서울 이화여고 김성수 국어교사는 ‘이조 쌤(선생님을 뜻하는 은어)’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이조 쌤은 ‘이화의 조선인’의 줄임말. 김 교사는 별칭에 걸맞게 효, 존경 등 예절을 매우 중시한다. 수업 시작 전엔 ‘차렷, 경례’ 대신 ‘공수, 배례’라는 구호를 사용한다. 학생들은 배꼽에 두 손을 얹고 천천히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한다. 기본적인 예절부터 지켜 스승과 제자가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기르기 위해서다.

이화여고에는 일명 ‘이조 패밀리’도 유명하다. 옷매무새가 단정치 못하거나 복도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뛰어다니는 등 예절에 어긋난 행동을 하다가 김 교사로부터 지적을 받은 학생들의 모임이다. 10명가량에서 많을 땐 30명쯤 되는 이들 학생은 일주일간 오전 7시 20분에 교무실 앞에 모여 예절교육을 받는다. 10∼15분간 김성수 교사는 채근담, 명심보감, 시경 등 동양 성현들의 가르침을 담은 명서 속 구절들을 소개하고 의미를 설명한다. 이런 교육을 해온 지 벌써 25년째다. 김 교사의 예절교육은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다’는 그의 교육철학에서 비롯됐다. 사람의 됨됨이가 갖춰지면 학업은 저절로 이뤄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 교사는 “생활지도와 학업지도는 분리해서 하는 게 아니다”면서 “‘행유여력 즉이학문(行有餘力 卽以學文·학문을 할 자격은 인간의 도리를 갖춘 후 이뤄진다)’이라는 공자의 말도 있듯이 성현들의 가르침을 전달해 학생들이 올바른 인성을 먼저 갖추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첨단 디지털시대를 사는 요즘 고등학생들이 이런 김 교사를 ‘고리타분하다’고 여기진 않을까? 실제로 학생들 사이에서 김 교사의 인기는 높다. 이 학교 2학년 김정해 양은 “언뜻 엄하신 분 같지만 학생들을 교무실에 데려와 차를 따라 주며 다도예절을 가르쳐 주시기도 한다. 세심하게 학생들을 챙기는 모습에 감명 받는 학생들이 많다”고 전했다.

서울 동성고 김철진 영어교사도 독특한 방식으로 인성교육에 힘쓴다. 그는 동성고의 모든 학생을 “세자”라 부른다. 학생들이 이유를 물으면 “언젠가는 ‘왕’이 될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왕’이 된다는 건 꼭 사회적 성공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 말 속엔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은 곧 왕이 된 것과 다름없다”는 김 교사의 철학이 담겨 있다.

학생들은 김 교사의 수업 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대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을 높이 들고 “나는 세자입니다!”라고 외친다. 일명 ‘세자선서’다. 미래에 좋은 왕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다. 김 교사도 오른손을 들고 “사랑합니다”라며 답례한다. 그는 “교사가 먼저 학생을 존중하면 학생도 교사를 존중한다”면서 “학생들이 지금 심은 존중의 씨앗을 키워 이웃, 사회에 관심을 갖고 봉사를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재원 기자 j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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