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수능은 지난해보다 교육방송(EBS) 반영률이 70%로 높기 때문에 EBS 교재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발간된 EBS 언어영역 교재(한국교육과정평가원 반영분)에는 약 470개 작품이 실려 있고, 그중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생소한 작품도 적잖다. EBS 교재에 수록된 생소한 작품들을 4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번 호엔 가사(歌辭)와 한시(漢詩)를 살펴보자.》
올해 실시된 6, 9월 모의평가를 살펴보면 EBS 교재에만 실렸던 작품이 여럿 출제됐음을 알 수 있다. 출제된 생소한 작품을 보자. 6월에는 △김춘수의 시 ‘강우’ △임철우의 현대소설 ‘눈이 오면’ △고전소설 ‘낙성비룡’이, 9월엔 △이신의의 고전시가 ‘단가육장’ △김원일의 현대소설 ‘잠시 눕는 풀’ △고전소설 ‘김원전’ △최인훈의 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있었다.
수능 언어영역에서는 사실적 사고, 과학적 사고, 논리적 사고를 요구한다. 이렇다 보니 지문의 수준에 따라 체감 난도가 높게 나타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본 작품이 출제된다면 학생들이 문제를 보고서 당황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EBS 교재에만 있는 생소한 작품 중 가사와 한시를 주제별로 살펴보자.
○ 주제별로 본 생소한 가사
[1] 안빈낙도, 안분지족의 삶을 그린 가사
세속의 덧없음을 알고 자연을 예찬하며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내용은 가사 작품의 주요 주제다. 이이의 ‘낙지가’를 보면 ‘여파(餘波)에 정을 품고 그 근원을 생각해 보니/ 연못의 산 물결은 맑고 깨끗이 흘러가고/ 오래된 우물에 그친 물은 담연(淡然)히 고여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시적 화자가 세속적인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인식하고 자연에 은거하며 즐겁게 살고 있다는 내용의 가사다.
가난한 데도 만족하는 화자를 그려낸 가사도 있다. 정훈의 가사 ‘우활가’는 서문을 ‘엇지 생긴 몸이 이대도록 우활한고’라고 시작했다. 자연을 벗 삼아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화자의 소탈한 생활상을 볼 수 있다.
‘하늘이 만드시길 일정 고루 하련마는/ 어찌한 인생이 이토록 괴로운고./ 삼순구식(三旬九食)을 얻거나 못 얻거나/ 십년일관(十年一冠)을 쓰거나 못 쓰거나.’ 궁핍을 탄식한다는 뜻의 탄궁가는 조선 중기 작품으로 화자의 가난한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의 전반부에서 화자는 가난을 탄식하지만, 후반부에서는 ‘하늘이 준 가난’ ‘빈천도 내 분수’ 등 상황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인다. 전체적으로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시어를 사용했다.
[2] 애상, 그리움의 감정을 담은 규방가사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규방가사 중에서도 생소한 작품이 등장한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그리움을 담아낸 가사가 많은 게 특징이다.
‘생각 끝에 한숨이고 한숨 끝에 눈물이라./ 눈물로 지어내니 들어보소 단장사(斷腸詞)라.’ 가사 ‘단장사’는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한 아픔과 그리움을 노래한다. 여기서 ‘단장’이란 창자를 끊는다는 의미로, 화자의 마음이 고통스러움을 의미한다.
‘정월(正月) 상원(上元)일에 달과 노는 소년들은 답교(踏橋)하고 노니는데 우리 님은 어디 가고 답교할 줄 모르는고.’ 규방가사 ‘월령상사가’는 1∼5월의 세시 풍속과 이를 즐기는 소년들을 부러워하는, 임을 잃은 여인의 심정을 노래한다.
‘이 몸이 여자 되어 도로 백년 어려워라. 문 밖에를 아니 나고 안방에서 나서 자라 백년가약 정할 적에 연분(緣分)을 따라가서 불경이부(不更二夫) 굳은 언약 철석(鐵石)같이 믿었더니 무심(無心)한 한 통의 편지 어디로 온단 말가.’ ‘상사화답곡’에서는 자신을 사모하는 마음을 결혼 전에 말하지 않은 남자에 대한 원망과 책망이 드러난다. 끝에는 꼭 만나러 가겠다는 의지적 내용이 담겨 있다.
노처녀의 비애를 담은 ‘노처녀가’는 좋은 혼처를 가리는 부모 때문에 마흔 살이 넘도록 노처녀로 살아가는 여인의 비애를 담고 있다. ‘인간에 생긴 남녀 부부 자손 갓건마는/ 이 내 팔자 험구즐손 날 가튼 이 또 잇는가.’ 화자는 ‘답답한 우리 부모 ∼ 다만한 딸 늘거간다’라면서 양반 행세를 하는 부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편, ‘상사별곡’은 같은 제목으로 두 개의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세보의 ‘상사별곡’은 이별 후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여성적 어조로 노래한 가사다. ‘흉중의 불이 나니 구회간장 다 타 간다./ 인간의 물로 못 끄는 불 없건마는/ 내 가슴 태우는 일은 물로도 어이 못 끄는고.’의 문장을 기억해 두는 게 좋다.
작자미상 ‘상사별곡’은 ‘인간 이별 만사(萬事) 중에 독수공방(獨守空房)이 더욱 섧다/ 상사불견(想思不見) 이내 진정(眞情)을 제 뉘라서 짐작하리’라는 말로 시작한다. 인간의 이별 만사 중에 독수공방이 가장 서럽다는 내용을 표현한다.
[3] 의지, 교훈 등을 나타낸 가사
최현의 ‘명월음’은 임진왜란으로 몽진 길에 오른 임금을 밝은 달에 비유했다. ‘달아! 밝은 달아! 청천에 떴는 달아!/ 얼굴은 언제 나며, 밝기는 뉘 시켰나?/ 서산에 해 숨고, 긴 밤에 침침한 때/ 청렴을 열어 놓고 보경을 닦아내니.’ 이 작품은 달이 차다가 기울고, 구름에 가렸다가 어느새 모습을 드러내듯 나라의 환란도 머지않아 물러날 것이라는 의지를 담고 있다.
‘어와! 여러 양반들아! 돌아앉아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어찌하여 젊은 손님이 헤아림 없이 다니는 것인가. 마누라의 말씀을 안 들어 보았는가.’ 이원익의 ‘고공답주인가’는 ‘고공가’에 화답하는 노래다. 비유적인 표현방법을 주로 사용하며 제재, 주제, 문체, 기교 모두 고공가와 상응한다. 이 작품은 한 국가의 양반과 백성을 농사짓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만하추동 좋은 세상 꿈결 같이 다 보낼 때/ 매양 그러할 줄 알고 포식난의(飽食暖衣) 편히 자라/ 인도(人道)를 못 닦으니 행실이 무엇인고./ 사서삼경 던졌으니 공맹안증(孔孟顔曾) 그 뉘 알리.’라고 노래하는 ‘백발가’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젊은 시절을 헛되이 보내지 말 것을 당부한다.
○ 주제별로 본 생소한 한시
[1] 고독과 그리움을 표현한 한시
한시는 EBS 교재 속에 약 30개가 실려 있다. 그중 최치원의 ‘제가야산독서당’, 정약용의 ‘타맥행’ 등 몇 개를 제외하곤 모두 생소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역사 속 인물들이 쓴 한시는 당시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 ‘단종어제자규루시(端宗御製子規樓詩)’는 단종의 고독함과 슬픔을 나타낸 한시다.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을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 푸른 산 속을 헤맨다.’라고 노래하는 이 작품은 왕위를 빼앗기고 궁중에서 쫓겨난 단종의 심경을, 이 산 저 산 옮겨 다니며 밤새 우는 자규에 감정이입해 형상화했다.
‘몸은 낯선 땅에 있어 못 가는 신세/ 내 집은 서울 장안, 한강 기슭’이라고 시작하는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몸은 낯선 땅에’도 알아두면 좋다. 소현세자는 병자호란 중 청나라에 볼모로 가서 고국을 그리워했다. 화자는 달 밝은 밤중 피어난 꽃잎과 제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고향의 봄을 그리워한다.
‘홀로 앉아 찾아오는 손님도 없이/ 빈 뜰엔 비 기운만 어둑하구나.’라고 시작하는 서거정의 ‘독좌’는 속세를 떠나 은거하면서 자연물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2] 사랑의 이별과 슬픔을 표현한 한시
사랑하는 사람과의 애통한 이별도 한시의 주요 주제다. 허난설헌의 ‘사시사’는 ‘비단 장막으로 찬 기운 스며들고 새벽은 멀었지만/ 텅 빈 뜨락에 이슬 내려 구슬 병풍은 더욱 차갑다.’로 서두를 연다. 사계절의 풍경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외로움을 표현했다.
이덕무의 ‘새벽에 연안을 떠나며’는 ‘그치지 않는 새벽닭 소리 객사 동쪽에 들리는데/ 스러지는 별빛은 달과 짝하여 허공에 드리워져 있네.’라고 노래한다. 이별의 장면을 묘사하면서 두고 온 연인에 대한 미련을 노래한다.
가족과의 이별을 담은 한시도 있다. 이규보는 어린 나이에 죽은 딸을 애도하는 내용을 담은 ‘도소녀’를 썼다. ‘딸아이의 얼굴 눈송이와 같고/ 총명함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네/ 두 살에 벌써 말할 줄 알아/ 앵무새처럼 종알거렸고’라는 표현에서 이런 점을 엿볼 수 있다.
‘만나기는 왜 그리 늦은데다 헤어지기는 왜 그리 빠른지/ 기쁨을 맛보기 전에 슬픔부터 맛보았네’. 김병연의 ‘상배자만(喪配自輓)’은 아내의 죽음으로 깨닫게 된 인생무상과 슬픔, 아내에게 무관심했던 자신의 모습에 대한 탄식을 드러낸다.
[3] 당시 현실과 인생관을 반영한 한시
당시 백성들의 삶을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도 있다. 김시습의 ‘사청사우(乍晴乍雨)’는 ‘잠깐 개었다 비 내리고 다시 개였다 비 내리니, 하늘의 이치도 그러한데 하물며 세상인심이야’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잠깐 개었다 비 내리고’는 세상 인심도 변덕스러움을 나타낸다.
안축의 ‘염호(소금 만드는 집)’는 소금을 구워 생계를 이어나가는 일가족의 삶을 그렸다. ‘늙은이가 아들 손자 거느리고/ 조금도 쉬지 못한다./ 차가운 물을 바다에서 길어내느라/ 무거운 짐에 어깨와 등은 붉어진다.’란 내용에서 피폐한 백성들의 삶을 알 수 있다.
[4] 이상으로의 추구를 담은 한시
이상을 추구하는 화자의 모습을 그린 한시도 있다. 임춘의 ‘기몽’은 ‘내 꿈에 바람 타고 달나라 궁전에 이르러,/ 문 밀치고 곧바로 들어가 항아 잡고 물었네./ 어찌 너에게 장원급제를 맡기게 하였는가?’라고 노래한다. 이 작품은 좌절된 욕망에 대한 보상 심리를 ‘꿈’을 통해 나타낸다.
계랑의 ‘농학’은 시적 화자를 새장에 갇힌 새에 비유했다. ‘긴 털의 날개가 병들어 꺾이고서/ 슬피 울며 해마다 놀던 언덕 그리워하네.’란 내용에서 알 수 있듯, 구속받는 삶을 살아가는 처지를 한탄한다. 시적 화자는 새장에 갇힌 상황 속에서 ‘곤륜산 낭풍봉’을 그리워하는데, 이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이상적 공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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