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패션센터 4층 강당에서는 ‘동대문 패션상가 활성화를 위한 친절 향상 교육’이 열렸다. 서울시는 불친절 상인들 때문에 갈수록 손님들이 줄어들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지장이 생기자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사진 제공 서울시
“언니, 무슨 옷 찾으세요? 이거 어떠세요? 입으면 완전 황신혜 돼요!”
40대 중년 여성을 붙잡고 채근하는 옷가게 점원. 동창회가 있어서 옷을 사러 왔다는 고객에게 점원은 20대가 입을 법한 트렌디한 원피스를 막무가내로 추천한다. 고객 얼굴은 한순간에 일그러진다.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 옷을…”이라고 얼버무리는 고객. 점원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휴, 이거 일단 입어봐. 남들 시선 의식하지 말라니까 언니? 사이즈 뭐야 뭐?”
말도 짧아졌다. “저 ‘77 사이즈’인데요…”라고 말하는 고객에게 점원은 55 사이즈 옷을 들이댄다. “이거 손님한테 ‘딱’이야. 요새 다들 한 치수 작게 입어!”라고 말한다. 적극적인 점원을 뒤로 한 채 중년 여성은 빈손으로 가게를 나섰다. 그런 고객을 보며 점원이 외친다. “아 왜 그냥 가! 이상한 아줌마네….”
지난달 30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패션센터 4층 강당. 동대문 패션상가에서 일어나는 불친절 사례 상황극이 재연되자 50명의 동대문 패션상가 상인은 말없이 진지하게 쳐다봤다. 다소 과장된 모습에도 대부분 “내가 저랬나?”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서울시가 마련한 ‘동대문 패션상가 활성화를 위한 친절 향상 교육’ 현장이다.
○ 서울시, “상인들 인성교육 시급하다”
서울 대표 패션상권 중 한 곳이자 관광지로도 유명한 동대문 패션상가. 하루 유동인구만 53만 명이 넘는 이곳에서 동대문 패션상가 상인들의 친절 및 인성교육이 열렸다. 서울시 문화디자인산업과가 행사를 주관했다. 두산타워, 밀리오레, 헬로apM, 굿모닝시티 등에서 활동하는 상인 50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시 주도로 열린 인성교육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대문 패션상가는 종로5가 광장시장부터 청계8가 신성종합시장 사이에 위치한 31개 상가 2만3400여 점포를 가리킨다. 백화점에서 볼 수 없는 싸고 좋은 의류가 많은 까닭에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10대나 20대에게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고객 팔을 잡아당기고 욕설을 퍼붓는 악덕 상인(일명 동팔이)들이 동대문 패션상가의 이미지를 흐려놓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강옥현 서울시 문화디자인산업과 패션팀장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를 만들고 동대문에 외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하려는 시 입장에서도 이러한 불친절 상인들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수업은 그간 상인들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고객을 응대했는지 보여주는 상황극 위주로 진행됐다. 강사로 나선 컨설턴트 류병진 씨(37)는 “동대문 패션상가의 인테리어, 시설 등 겉모습은 백화점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상인들의 응대 등 ‘질’적인 부분은 여전히 ‘시장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상인들, “반성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동대문 패션상가 위기설’과 맞물린다. 과거만 해도 ‘싼 맛’에 동대문을 찾는 손님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동대문 패션상가보다 더 싸면서도 친절한 인터넷 쇼핑몰, 강서지역 아웃렛 매장들에 손님을 뺏기는 상황. 여기에 유니클로, 자라 등 값 싼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에도 밀리는 상황이다. 2000년 초 약 400억 원에 이르던 하루 매출액은 2008년 12월 현재 292억 원으로 떨어졌다. 고객 선호도 역시 43%에서 36.5%로 내려앉았다. 곳곳에서 빈 점포가 발생하는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업에 참석한 상인들 대부분도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13년 동안 동대문에서 아동복을 팔아온 상인 김영선 씨(45)는 “중학교 1학년 아들에게 혼자 옷 사러 동대문에 가지 말라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김 씨는 “무조건 팔고 보자는 과거 동대문시장 시절 문화가 여전히 이곳에서 통용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인성교육과 함께 6일부터 진행되는 ‘동대문 패션축제’의 한 코너로 불시에 매장을 점검해 점원 친절도를 조사하는 ‘동대문 미스터리 쇼퍼’제도 운영할 예정이다. 강 팀장은 “동대문 패션상가 친절도를 높이기 위해 이러한 교육과 프로그램을 내년부터 상시 행사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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